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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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이 만든 나치의 선전 영화 <의지의 승리>는 아돌프 히틀러가 1934년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 참가를 위해 하늘 높이 구름 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제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하강하며 전당 대회 참가를 위해 시민들이 질서 있게 이동하는 모습, 착륙한 비행기를 향해 지지자들이 히틀러식 거수 경례(하일 히틀러)를 하는 모습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나치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운집해 있는 집회 장소에서 위대한 히틀러,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독일의 구세주는 위엄 있고 우렁차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호소하는 그의 연설에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환호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하나’되어 독일을 위하겠다는 의지와 결연함, 바로 그것이다.

 

나치당의 지도 하에 하나된 독일과 독일민족을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하는, 대단히 잘 만들어진(그리고 성공적인) 이 선전 영화에서의 이미지들은 ‘고립되고 폐쇄적인 제3제국’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서 줄리아 보이드의 이 책은 굉장히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제3제국(1933~1945) 전부터 독일에는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1937년에 이르면 미국 방문객 수는 여간 오십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닫혀 있는 나라, 제3제국’이라는 이미지는 한참 잘못된 생각임이 분명했다. 그러면 이 시기 이렇게나 많은 외국인들이 독일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독일의 여행자들은 나치 하부 조직들의 끊임없는 집회와 함성 그리고 반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유대인들에 대한 집단적인 린치로 드러난 극단적 인종주의, 볼셰비즘에 대항하는 나치즘이라는 허울 좋은 선동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전쟁 전 독일을 방문한 사람들의 국적은 많은 경우 미국과 영국이었다. 그러나 방문자들의 연령과 목적은 단순 관광객들과 청소년 및 학생들, 작가들과 고위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했고 이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독일을 바라보았다. 종전 직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는 고난의 시기였다. 계속된 식량 부족과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는 독일인들의 모습에 대한 관찰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나치 집권 이전 독일 여행객들은 정치적 색깔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독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정리되고 깔끔한 도시 내부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나치 집권 후에는 독일을 바라보는 여행객들의 시선도 다양해진다. 물론 단순히 휴가를 보내러 온 관광객들 대부분은 반유대주의 구호와 유대인에 대한 차별 대우, 어딜 가나 넘쳐나는 갈색 제복과 귀를 때리는 구호, 스바스티카 마크를 접하였지만, 이는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일부 여행객들과 정치인, 직업적 탐구가들은 독일의 변화를 목도하며 단순한 관찰로, 또는 자신들의 기존의 정치적 견해를 따르거나, 바꾸며 히틀러 제국을 평가하였다. ‘히틀러는 이상주의와 국가적 자부심에 활기를 불어넣은 사람’이라는 어느 미국 화가의 반쯤은 무관심한 ‘눈 뜬 장님’(187p) 같은 시각, ‘십 년의 투쟁 끝에 히틀러 운동이 그처럼 성공을 거둔 것은, 하느님이 기적을 행사하신 명백한 증거’라는 영국인 교회 참사회장의 순진한 시각이 한 편에 있었다. 반면 다른 한 편에서 영국 소설가 크리스포트 이셔우드의 매우 예리하고 명민한 시각, 나치에게는 ‘국가 재건의 유일한 희망은 독재, 증오, 왜곡된 애국심 등이 재료로 들어간 히틀러의 스프뿐’이라는 평가와 같은 비판적 시각이 존재했다.

 

1933년에 창설된 제국 관광 위원회의 나치에 대한 해외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홍보 캠페인은 독일로 관광객들을 불러들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번 방문할 정도의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나치의 이미지 개선에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는 전쟁 직전까지 히틀러의 성실성과 선의를 믿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지금으로서는 2차 대전의 경과와 결과에 기반한 정해진 시각으로 히틀러와 그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순진한 믿음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시대를 살아간, 예컨대 영국인이라면 제3제국을 어떻게 평가하였을까? 히틀러(그리고 제3제국) 정권을 다소간 폭력적이고 급진적이긴 하나 독일 민족의 기풍을 새롭게 다지고 경제 발전을 이룬 성공적이고 존경받는 정부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름의 식견을 지닌 수 많은 방문자들이 보인 나치 정권에 대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은 이 물음에 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줄리아 보이드는 어떤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손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21p). 그러나 히틀러 시대 여행자들이 전하는 당시 독인인들의 생생한 생각과 삶의 모습, 제3제국 시기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상황 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은 당시 사회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그 시대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훌륭한 렌즈가 되어 준다.

 

 

*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09010)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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