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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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신문 헤드라인을 떠올려본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팬데믹, 경제적 악순환, 비방으로 가득한 정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두. 음울하고 우울한 기사들만 머릿속을 맴돈다. 사실 일전에 예방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것도 두 방이나. ‘사실충실성’에 입각하여 비관적 본능이 틀렸음을 직시하라는 <<팩트풀니스>>, 인간 본성의 선한 측면을 곱씹는 희망의 연대기 <<휴먼카인드>>.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으며, 인간의 선한 면모는 인류의 여전한 희망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이 두 권의 책은 정말 훌륭했다.

 

그러나 꾸준히 보도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적 근본주의 정권의 여성 인권 탄압, 문화적 획일성 정책 등 시대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모습은 ‘우리 세계는 정말 나아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 스티픈 핑커는 이런 물음에 대해 다시 한번 ‘그렇다’라고 답한다. 2011년에 출간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제목이 알려주듯)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음을 아주 자세히 논증했으니 ‘다시’라는 표현이 맞긴 하다. 그렇지만 7년 만에 내놓은 이 책은 전작과는 초점이 사뭇 다르다.

 

책을 관통하는 단어는 바로 ‘계몽’이다. 역사나 사회과학책에서 들어본 ‘계몽주의’에서의 계몽? 맞다.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계몽주의’는 몇 백 년 전(대략 18세기)에 유행했던 정치적, 문화적, 철학적 사조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 시대에 왜 계몽이람. 그러나 칸트의 계몽에 대한 정의는 그것이 비단 그 시대만의 사조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핑커는 ‘감히 알려고 하라!’라는 모토 속에서 만개한 계몽주의의 생각을 크게 네 가지 주제로 정리한다.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 이 네 주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객관적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에 기대지 않는 사고 방식인 ‘이성’은 ‘과학, 과학적 태도 및 방법’이 만개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보편적 인간 본성에 대한 계몽주의의 탐구는 특정 집단이나 종교가 아닌 개인의 안녕과 권리에 특권을 부여하는 ‘휴머니즘’에 이르게 된다. ‘이성, 과학, 휴머니즘’ 덕분에 인류는 지적, 도덕적으로 ‘진보’할 수 있었다.

 

‘인류는 진보했다.’ 핑커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에 대한 논의에 앞서 우리 세계는 과거에 비해 모든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진보를 성취했음을 책 전체의 반이 넘는 분량을 할애하고, 70여 개의 그래프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활용하여 논증한다. 신문에서 접하는 특정한 사건들 또는 단기적인 전망을 보고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는 나 같은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 결과는 매우 놀랍다. ‘평균 수명은 놀랍게도 71.4세에 이르렀고, 세계는 더 부유해지고 평등해졌으며, 세계는 전례 없는 평화의 시기를 살고 있고 더욱 안전해졌으며, 지구 환경은 나아질 가능성이 충분하며, 삶의 질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좋아졌으며......’ 세계는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으며, 좋아졌으며 계속 좋아지고 있다. 매우 구체적이고 친절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진보는 이성의 힘, 과학에 대한 믿음과 확신, 거기에 더해 인간과 개인을 우선시하는 휴머니즘의 가치와 함께 할 때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는 완벽한 세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위험한 유토피아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모든 지표에 있어서 인류의 우상향이 의미하는 바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과 같이 단기적 부침 속에서도 장기적으로는 조금씩 개선해 간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를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제 계몽의 가치를 곱씹을 때다. 지금, 다시, 계몽.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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