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 - 쿠빌라이 칸의 특사, 중국인 최초로 유럽을 여행하다
모리스 로사비 지음, 권용철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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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바티칸 문서고에는 1288년 교황 니콜라우스 4세가 당시 페르시아를 지배했던 몽골 제국(일칸국통치자 아르군 칸에게 보낸 서신 사본이 보관되어 있다서신의 주된 메시지는 칸의 기독교로의 진정한 개종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아래와 같이 충고하고 있다.

 

즉시 일어나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는 것에 다가갈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현생을 살고 난 이후 지옥의 문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214p).”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인 13세기칸의 기독교로의 개종이 시급함을 타이르는 교황의 이 서신 전달을 책임진 인물은 그 내용이 썩 만족스럽진 않았을 것이다그가 일 칸국에서 유럽으로의 고되고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한 것은 교황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의 군사적종교적 동맹을 성사시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교황에게 아르군 칸의 서신을 전하고 답신을 받은 임무를 완수한 그는교황의 선물과 훌륭한 대접에 감사를 표하고 다시 페르시아로 향한다.

 

일 칸국의 이러한 중요한 외교적 임무를 맡게 된 인물은 바로 랍반 사우마이다이 책은 랍반 사우마 자신의 생애와 여행 기록을 고스란히 옮긴 것은 아닌데그러한 판본은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랍반 사우마가 페르시아어로 남긴 기록은 시리아어로 번역되었는데시리아인 번역자가 설명을 추가하고수많은 내용을 삭제한 그 판본(번역본)만이 어렵사리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일부만 전해진 그의 기록은 몇 가지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13-14세기 팍스 몽골리카(Pax Mogolica)의 시대몽골의 유라시아 대륙 지배로 가능해진 대여행의 시기에 쓰여진 기록은 마르코 폴로이븐 바투타처럼 서에서 동으로의 여행기만 잘 알려져 있을 뿐이다랍반 사우마는 그 반대다그는 페르시아가 아닌 몽골족과 운명을 같이 한 튀르크 부족 출신으로그의 여행은 동에서 서의 경로인쿠빌라이 칸의 여름궁전인 상도에서 출발하여페르시아를 거쳐 서유럽까지 이르렀다다시 말해 랍반 사우마의 기록은 13세기 동아시아인이 바라본 유럽과 그 당시의 종교적 의례와 문화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 것이다.

 

모리스 로사비는 랍반 사우마의 불완전한 기록에 역사적 배경지식충실한 설명과 해석을 더하여 보다 완전한 기록을 전해준다쿠빌라이 칸의 승인하에 대략 1275년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상도에서 출발한 네스토리우스교도 랍반 사우마의 중앙아시아를 경유한 페르사아를 향한 위험천만한 첫 번째 여정네스토리우스교 수사로서의 페르시아에서의 정착 생활그리고 아르군 칸의 외교 특사로 기독교 추기경들프랑스 왕 필리프 4잉글랜드왕 에드워드 1끝으로 교황을 만나고 온 두 번째 여정까지흥미진진한 한 편의 여행기로서도 손색이 없다.

 

랍반 사우마의 임무는 당시 일 칸국에 위협이 되었던 맘루크 왕조에 대항하여 교황 및 서유럽 국가들과 십자군 동맹을 맺자는 칸의 서신을 전달하는 것이었다그의 기록에는 이 외교적 임무 외에 무척 관심을 쏟은 것이 있으니 바로 종교적 성지와 성물의 순례에 있었다그는 로마에서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제노바에서는 산 로렌조 대성당파리에서는 생 드니 성당 등을 돌아보며 견문을 비교적 상세히 남겼는데그의 여행의 원 목적이 종교적 성지 순례에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 목적뿐만 아니라 외교적 임무도 훌륭히 수행한 랍반 사우마는 아르군 칸에게 종교적 동맹에 대한 프랑스 왕과 잉글랜드 왕의 긍정적인 답변과 교황의 미적지근한 서신을 전달한다하지만 칸은 동맹 성사에 대해 기대하며랍반 사우마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를 위한 교회를 지어주기까지 한다그리고 남은 여생을 종교지도자로서 페르시아에서 보내게 된다.

 

모리스 로사비의 안내를 따라가며 접하는 유라시아 동쪽 중국에서 태어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서유럽에 이르기까지 한 랍반 사우마의 일생과 행적은 13세기 유라시아 세계에 대한 생생한 모습을 그려낸다그의 여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장의 지도와 종교적 성지와 성물의 사진들은 당시 모습을 한껏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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