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링, 칭링, 메이링 - 20세기 중국의 심장에 있었던 세 자매
장융 지음, 이옥지 옮김 / 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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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부(國父) 쑨원과 타이완의 국부(國父) 장제스. 이들을 빼놓고선 20세기 중국을 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는 국민당 지도자라는 정치적 지향 외에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으니, 두 사람 모두 쑹씨 가문과 긴밀히 얽혀 있다는 점이다. 돈, 명예, 권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쑹가왕조’라고도 불린 쑹씨 가족. 그리고 남자 형제 셋보다 더욱 유명했던 이 책의 주인공 ‘쑹씨 세 자매들 - 아이링, 칭링, 메이링’. 중국근현대사를 다룬 여러 권의 책에서 접한 격동기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세 자매의 이야기는 역사적 상상력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다.

 

쑨원의 구애를 뿌리치고 쿵샹시와 결혼한 독립적 여성 ‘첫째 아이링’, 쑨원의 부인(마담 쑨원)이자 차후 공산당의 부주석이 되는 ‘둘째 칭링’, 장제스의 부인인 퍼스트 레이디 ‘셋째 메이링’. 장융은 이들 세 자매를 쑨원, 장제스, 공산당의 조연이나 에피소드 거리가 아닌 권력의 핵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간 혼란기 중국이라는 무대의, 당당한 조연으로 불러들인다. 쑨원과 장제스를 통해 보는 쑹씨 세 자매가 아닌, 쑹씨 세 자매의 렌즈로 이들과 중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세 자매가 권력의 일인자들에 미친 영향, 그들의 정치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모습은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한다.

 

인간의 진정한 면모는 위기 상황에 나타나는 법. 자신보다 27살 위였던 쑨원과 그의 대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으로 부모의 극렬한 반대를 뒤로하고 1915년 그와 결혼한 칭링. 그러나 1922년, 베이징 정부와의 협상을 이행하지 않은 쑨원은 이를 계기로 반대 세력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쑨원은 대피 후 자신의 탈출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고자 자진해서 남은 칭링의 탈출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나 그 와중에 칭링은 아이를 유산한다. 이때 보인 쑨원의 권력욕으로 칭링의 헌신과 신뢰는 한풀 꺾이게 된다. 이 사건은 쑨원에 대한 만들어진 신화에 물음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장제스에게 미친 자매들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장제스가 막내 메이링과 결혼할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이 바로 메이링이 제일 믿고 따르는 큰언니 아이링이었다. 장제스는 아이링을 매우 신뢰했다. 아이링이 자신의 정치, 경제 분야에 관한 의견을 전달하면 장제스는 언제나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부인 메이링은 아이링 이상이었다. 중일전쟁 시기 물자를 조달하고, 셔놀트 대위를 초빙하여 중국 공군 건설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1936년 장쉐량이 일으킨 시안사변 때는 목숨을 건 시안행으로 장쉐량과의 협상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어 장제스를 구하기도 했다. 부인 메이링에 대한 장제스의 믿음과 애착은 타이완에서 죽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아이링, 메이링과는 다른 삶을 선택한 칭링. 그래서 그런지 내심 그녀의 선택에 관심이 간다. 그녀는 쑨원 사후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공산당과 긴밀히 협력하고, 타국에서 그녀의 힘이 되어 준 덩옌다를 암살한 장제스를 극도로 혐오하게 된다.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메이링은 장제스의 부탁으로 칭링을 초대해 공산당이 내전을 끝내는 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단도직입적 질문하고, 이에 칭링은 거짓으로 자신은 공산당과 관련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녀는 언니, 동생과는 다른 인생 경로를 선택한 것이다.

 

1949년 공산당 승리 후 세 여성의 각기 다른 운명을 다룬 5장은 박진감 있고 속도감이 넘치는 앞장들과는 달리,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세 자매는 각기 다른 인생 후반기 여정을 걷는다. 마오쩌둥 정부의 권력 없는 부주석으로,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는 칭링. 문화대혁명 시기 정치적 비판의 대상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그녀는 그 후 수양딸들과의 만남으로 인생 말년을 채워간다. 아이링은 뉴욕에 정착하지만, 가족들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뉴욕에서 눈을 감는다. 타이완에서 장제스 옆을 지킨 메이링, 그녀는 장제스 사후 뉴욕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가끔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지내다 2003년 세상을 떠났다.

 

장융도 언급하고 있지만, 자매들의 풍요롭다 못해 사치스러운, 당시 중국 민중들의 삶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류층의 여유로운 생활. 그리고 정치적 권력을 바탕으로 한 재산 모으기 등의 행동은 당시나 지금이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일찍이 미국에서 유학한 세 자매. 그들은 미국에서 그저 풍족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중국 격동기의 중심에 있고자 했다. 그녀들은 중국이 낳은 시대의 자식이었지만, 결국 중국을 움직인 삶을 살았다.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인용문 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들 모두 수많은 자료들, 예컨대 서신, 회고록,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서술의 신뢰도뿐만 아니라 생동감을 더한다. 장융의 유려한 서술 덕분에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읽었다. 그녀가 어렵게 찾아낸 인물 사진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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