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박문호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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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읽는 과학책 중 인상적이었던 책이 두 권 있다. 한 권은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조지프 르두, 바다출판사)로 생존 행동과 뇌의 진화, 의식, 특히 인간 의식의 발달을 깊고 넓게 파고든 점이 일품이었다. 또 한 권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리사 펠드번 배럿, 더퀘스트)으로 ‘예측하는 뇌’라는 관점에서 최신 뇌과학 연구 결과와 그것이 삶에 주는 의미를 따뜻하게 전달하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세계적인 신경과학자가 쓴 책이라는 것. 둘째, 자신의 전문 분야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려고 노력한 책이라는 것. 이런 매력적들을 모두 가진 책이 나왔다. 바로 이 책 <<느끼고 아는 존재>>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리처드 도킨스, 닐 디그래스 타이슨, 브라이언 그린같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과학계의 스타는 아니나,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을 포함하면 그의 책이 4종(<<데카르트의 오류>> <<스피노자의 뇌>> <<느낌의 진화>>, 이번 책 <<느끼고 아는 존재>>)이나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해준다. 그런데 기존 저작들에서 다루는 내용이 전문적이고 복잡하다 보니, 널리 읽히진 않았다. 특이하게도, 이것이 이 책을 쓴 동기로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중요한 아이디어만 서술하고자 했음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내용 전달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다.

확실히 이전 책들에 비해 분량 면에서도 컴팩트 하며(작은 판형, 236쪽), 특정 주제에 대해 약 2~3쪽 분량의 아이디어의 핵심을 서술하고 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존재(1장), 마음(2장), 느낌(3장), 의식과 앎(4장)이라는 핵심 연구 대상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앞 장의 내용은 뒷장의 내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다마지오는 먼저 존재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정의 내리고 생명의 역사에서 느낌과 앎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생명체의 존재를 설명하는 핵심 용어는 바로 ‘항상성’이다. 항상성은 ‘유기체가 최적의 기능을 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생리학적 범위 안에 유기체를 유지시키는 과정’(102p)으로 존재는 항성성 유지를 위해 한 발짝 나아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느낌(feeling)’이다. 느낌은 자신의 몸 상태를 마음속에서 표상하게 해주거나, 자신만의 삶을 경험하도록 해주며, 자아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53p). 느끼는 존재는 이제 ‘앎’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외부 세계 이미지와 느낌의 결합으로 의식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1장이 서론 격이라면 이제 본격적으로 마음, 느낌, 의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의식은 마음과 연결된다. 의식은 마음을 만들 수 있는 유기체에서만 나타나며, 의식이 있어야 마음의 내용물을 의식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은 외부 세계의 이미지와 몸 내부 이미지의 혼합물로, 2장은 많은 부분 외부 세계의 지각에서부터 심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로부터 시작된 신경활동이 어떻게 마음이 되는지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그의 다른 저서의 제목이 <<느낌의 진화>>(원제 The strange order of Things)인데서 알 수 있듯 ‘느낌’은 다마지오 사유의 핵심 용어다. 느낌(feeling)은 비슷한 단어인 정서(emotion)와 뚜렷이 구별된다. ‘정서’가 지각 사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비자의적인 반응을 의미한다면, ‘느낌’은 정서에 의해 촉발된 마음속 경험을 의미한다. 정서가 느낌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먼저이고 그 다음 느낌이다. 3장에서는 느낌의 기원, 기능, 구성과 역할, 신경계와의 관계 등 느낌에 관한 풍성한 논의를 담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느낌이 ‘생명 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느낌은 마음이 속한 유기체 내부의 생명 상태, 즉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신호를 판단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118-119pp).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느낌은 앞서 말했듯 의식과 연결된다.

다마지오는 논의의 종착점인 ‘앎과 의식’에 제일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마음에 의식이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있는 것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131p).’ 느낌은 의식 있는 마음의 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의식의 기저를 이루는 요소이다. 흔히들 의식과 마음을 같은 것으로 보지만, 의식이 곧 마음은 아니다. 오히려 의식은 ‘마음이 풍성해진 상태’이며 ‘마음의 요소들이 추가되는 과정’, 즉 확장된 마음이다. 이런 의식 있는 마음은 ‘아는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다시 종교, 과학, 정치, 경제, 철학, 음악, 미술과 같은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

짧은 책 속에 수십 억 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다마지오는 ‘느낌’을 키워드로 생명의 역사 속 진화의 산물인 ‘존재, 마음, 의식과 앎’을 명쾌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의도대로 이전 책들에 비해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보다 쉽게 다가온다. 분명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기존의 생각을 재고하게 만드는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느낌, 마음, 정서, 정동’등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리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느낌의 의미, 의식의 출현 등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느낌의 진화>>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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