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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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에게해에 위치한 초승달 모양의 섬 ‘산토리니’. 해안선 인접한 언덕, 푸른 하늘과 조응하듯 파란색 지붕을 얹은 새하얀 집들이 빼곡히 위치한 아름다운 모습은 정말 이국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섬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중요 거점 중 한 곳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도 더 전에 번성했던 크레타 문명이 북쪽 그리스 본토로 뻗어나가는 경유지였던 것. 기원전 1500년에 발생한 화산폭발과 쓰나미는 산토리니 섬의 반쪽을 앗아가 버렸고 미노아 문명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잠들게 했다. 김헌 교수는 이러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축제와 신화, 역사를 기행문 형식으로 생생하고 흥미롭게 전달한다.

그리스 로마사로 역사에 입문하여 어쩌다 그리스 철학으로 학위까지 받게 된 나에게 있어 그리스 문명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제우스를 필두로 한 끝이 없는 신화, 마라톤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 페르시아와의 3차례에 걸친 대규모 전쟁,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지중해 패권 전쟁이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배경으로 한 소프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작품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죽음, 형상(이데아)의 세계를 향한 플라톤의 열정. 이 모두를 품은 그리스 세계가 불러일으키는 풍요로운 상상력은 그리스 문명이 다른 어떤 문명도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매력은 자연히 그리스 문명의 싹이 틀 수 있게 한 자연적 환경과 그들이 남긴 문명의 흔적을 직접 보고 싶은 열망으로 이어진다.

대학 시절 김헌 교수의 교양 수업을 직접 들으며 감탄한 바 있는 그의 서양 고전 및 고대 세계에 대한 학문적 진지함과 열정, 풍부한 전달력은 주저 없이 이 책을 읽게 했다. 그리스 본토와 에게해 및 소아시아 지역을 약 열흘 간 돌아본 여행(1,2부)과 페네키아 문명 중심의 이집트, 튀니지, 몰타를 여행한 여행(3부)의 두 번에 걸친 여정과 솔직한 감회는 그리스 문명의 역사와 신화를 매력적으로 전달한다.

아테네에서 출발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 델피와 아라호바에서 마무리한 본토를 여행한 1부는 축제와 그 축제와 지역에 얽힌 신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범그리스 4대 제전이 열렸던 장소들, 이스트미아(이스트미아 제전), 네메이아(네메이아 제전), 올림피아(올림퓌아 제전), 델피(퓌티아 제전)를 중심으로 하되 다른 제전들과 미케네 문명, 신전들도 답사하며 그에 얽힌 흥미로운 신화와 역사를 전달하는데, 직접 답사하며 찍은 생생한 사진은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준다. 축제의 현장인 스타디온은 맨몸으로 경기를 펼치는 사내들의 활기찬 모습을, 신전과 조각상들은 신들이 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삶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스 세계에서의 축제의 의미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여러 제전들의 기원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단연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폴론, 데메테르,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등 흥미로운 신화 속 인물들이다. 여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다투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화합하는 신들을 기리는 축제는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신들과 하나되어, 언젠간 죽을 자신의 운명을 잊으면서도 가슴 깊이 새기는 역설의 현장인 것이다(18p).

이제 그리스 본토를 떠나 에게해로 여정이 이어진다. 에게해와 소아시아의 답사 지역들 모두 하나같이 매력적인 곳들이다. 에게해의 패권자였던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의 그 델로스 섬,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태양의 신 헬리오스 신상을 품고 있던 로도스 섬, 한 번 쯤 들어본 적 있을 미노타우루스, 테세우스, 아리아드네로 유명한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 크레타 섬. 이 섬들의 신전과 항구에서 보이는 푸르른 지중해의 탁 트인 매력적인 풍광은 분명히 그리스인들의 상상력과 그들의 이야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1차 여행의 종착지는 출발지였던 아테네로 소크라테스의 비극적 죽음과 비극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는다. 그리스 철학이 전공이었던 터라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갇혔다는 아크로폴리스 서남쪽의 감옥 사진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대화편 속 이야기, ‘죽음은 철학의 완성’이라는 그의 불멸의 언명을 곱앂어 보게 한다. 그리고 꼭 한 번 들러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페니키아 문명 중심의 2차 여행은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몰타를 차례로 들른다. 이들 지역들 또한 흥미로운 인물과 신화를 품고 있다. 알렉산드로스와 그 후계자들의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를 영원한 고대 도시로 남게 만들기에 충분하며, 로마의 건국 신화의 주인공 아이네아스와 카르타고를 건설한 디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그 후 두 나라의 운명을 돌아보게 만든다.

김헌 교수의 여행을 간접 체험하며 그리스 문명에 대한 개인적 향수가 조금은 가신 느낌이다. 대신 고대인들의 진지하고 엄숙하되 흥겨운 축제와 흥미로운 신화 이야기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차후 그리스 여행의 여정을 짤 때 반드시 참고하고 또 여행 가방에 넣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여행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스 문명의 향기와 매력이 남긴 꽤나 오래 갈 것 같은 여운은 나를 반드시 고대 그리스 세계로 데려가지 않을까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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