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비밀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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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기’, 이미 알고 있는 또는 익숙한 대상, 주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사고하는 것. 사유의 폭을 넓히고 대상을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방식 중 하나.

지구상의 거의 대다수 생명체가 이것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색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있는지를 보통 잊고 산다. 가끔 지구 밖 우주를 생각하며 이것의 중요성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다. 이것은 바로 ‘공기’다. 우리에게 ‘공기’만큼 익숙한 대상이 또 있을까? 퍼뜩 떠오르는 것, 물, 전기, 집, 가족... 그러나 이들은 볼 수 있을뿐더러, 이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 더러 있게 마련이다. 샘 킨은 너무 익숙해서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그 ‘공기’를 ‘낯설게’ 보도록 안내한다.

과학과 역사를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훌륭한 이야기꾼 샘 킨(이하 저자)의 애독자로서 이번 책은 (그의 다른 책과 비교해 볼 때도) 제목부터 호기심을 마구 자극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로마 공화정의 전설적 인물인 ‘카이사르(의 죽음)’과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인 ‘숨(쉬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이를 통해 알게 될 공기의 비밀은 무엇일까? 정적들의 난도질로 임종 직전 내쉬었던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의 공기 분자를 지금 내가 들이마셨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흥미롭게 설명하는 저자의 글솜씨는 여전하다. 덕분에 그토록 익숙했던 것(공기, 숨쉬기)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기의 과거(1부)부터 현재(2부), 미래(3부)를 차례로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짜임새 있는 구성은 공기에 대한 다층적 이해를 돕는다. <1부 공기의 탄생>은 수십억 년 전 초기 지구에 대기가 생성된 과정을 1980년 미국 세인트헬렌스산의 폭발적 분화와 그 산을 사랑했고 또 거기서 인생을 보낸 기괴한 노인 해리 트루먼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섞어 설명한다. 이해하기 따분할 수도 있는 지구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지각 활동과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흥미롭게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이제 지구 최초의 대기인 질소, 산소의 발견과 이용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질소 고정 기술을 고안하여 공기로 빵을 만드는 ‘공기의 연금술’의 주인공 프리츠 하버(그리고 카를 보슈)의 찬란한 발견과 기술의 부적절한 이용으로 인한 몰락,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의 산소 발견 과정과 비극적 최후 이야기는 익숙한 기체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그 이용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공기의 주요 구성성분(질소, 산소)들은 <2부 공기의 이용>에서 공기 중 미량 성분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긴다. 물론 이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잔뜩 얽혀 있다. 공기 중 일산화이질소(N2O)를 정제해 웃음 가스를 유행시킨 토머스 베도스와 험프리 데이비 이야기는 이 기체를 마취제로 사용하여 의학의 역사를 바꾼 윌리엄 모턴과 호러스 웰스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17세기 진공의 힘을 발견한 독일의 오토 게리케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토마스 뉴커먼과 제임스 와트로 또 증기를 폭탄에 활용한 노벨과 얽힌다. 이외에도 비활성 기체의 발견과 이용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주기율표의 제일 오른쪽 세로줄이 생겨나게 된 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3부 공기의 이용>은 조금 더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20세기 중반 미소 양국의 대기권 핵실험으로 인해 산소와 결합해 방사성 CO2를 만드는 공기 중 탄소-14의 양이 약 두 배로 늘어났는데, 그것이 나를 포함한 현재 인류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흘려듣고 말아 버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기상을 통제하고자 했던 어빙 랭뮤어의 집요한 노력과 실패는 기상 통제가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과학적 시도이기는 하나 쉽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말마따나 기체를 뜻하는 단어 gas가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에서 유래되었음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 장은 기후 변화를 통제하지 못해 인간이 지구 바깥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새로운 고향을 찾아 나선 인류의 선발대가 인간이 숨쉬기에 적합한 대기를 가진(그러나 화학적 구성은 지구의 공기와 다를 수 있다) 행성에 도착하여 숨을 내쉰다. 그 순간 지구의 대기와 새로운 행성의 대기는 영원히 새롭게 얽히게 된다. 오랜 역사 동안 숨쉬어 온 인간을 포함한 갖가지 유기체의 숨, 그리고 그 숨을 들이마신 현재의 인간과 그의 숨. 그 역사적 숨이 새로운 행성의 공기와 만난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물론 먼 미래의 일, 아니 실현되지 못할 낭만일 수도 있으나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이렇게 본다면 공기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공기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카이사르의마지막숨, 샘킨, 해나무,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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