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1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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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 다리우스 1세(기원전 550년경 ~ 기원전486년경)는 바빌론과 엑바타나(당시 메디아의 수도)를 잇는 무역로 벼랑 100미터쯤 위 바위 표면에 비문을 남겼다. 베히스툰 비문으로 알려진 거대한 비문(가로25미터, 세로15미터)은 다리우스의 공적비로, 다국어 문자 기록 외에도 반란을 일으킨 지역 지도자 열 명을 결박한 모습이 부조로 묘사되어 있다. 결박된 열 명 중, 세 번째와 여덟 번째에 두 명의 네부카드네자르(3세,4세)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들은 바로 기원전 6세기 후반 다리우스의 통치에 반대하여 왕위에 오른(그러나 결국은 실패한) 바빌론의 두 왕이다.

다리우스의 통치 이전인 기원전 539년 키루스의 점령에서 시작된 바빌론의 쇠락, 베히스툰 비문 바빌로니아 왕들의 굴욕이 상징하는 바빌론의 쇠퇴의 모습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찬란한 문명 도시 바빌론의 영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바빌론’이란 이름은 페르시아보다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다. 성경 속 ‘바빌론 유수’는 둘째 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각종 상품명과 상호명에 등장하는 ‘바빌론’은 친숙함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바빌론에 대해 페르시아보다 아는 것이 없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나 고대 근동사를 서술한 역사서에서만 간략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출간된 책 중 고대의 문명도시 바빌론을 하나의 주제로 깊이 있게 다루는 책은 카렌 라드너의 이 책이 처음이지 싶다. 카렌 라드너는 고대 근동사 전문가답게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의 바빌론부터 기원전 4세기 바빌론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된 이후 시기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약 1500년 동안의 바빌론의 성쇠, 바빌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권력 다툼, 바빌론의 고고학적 발굴 역사 및 유적, 유물 등을 두루 다루며 잘 알려지지 않은 바빌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전해준다.

책의 구성부터 바빌론이란 도시를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바빌론의 시대와 공간을 다룬 1장에서는 지도를 통해 바빌론이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문화를 알아보며 그 지역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돕는다. 2장에서는 바로 바빌론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데, 이 점이 개인적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바빌론 쇠망 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의 바빌론 방문의 역사, 17세기부터 시작된 바빌론의 고고학적 발굴 사업, 근래인 20세기 후반 사담 후세인의 바빌론 유물 복원 사업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바빌론이란 도시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살펴본다. 덕분에 바빌론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이후 3장부터 마지막 9장까지는 본격적으로 바빌론의 역사를 다룬다. 바빌론이 번성하기 시작한 기원전 18세기부터 시작되는 서술은 바빌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정치사를 큰 줄기로 삼는다. 함무라비 왕조의 번영과 몰락, 용병 출신 카시트인들에 의한 권력의 이동, 주변의 강대국이었던 아시리아, 칼데아인들과의 권력 다툼, 바빌론 토종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한 도시의 번영, 앞서 언급한 페르시아에 의한 바빌론의 쇠락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바빌론 장악까지. 그러나 정치사는 단선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다. 함무라비 법전(석비), 각종 비문과 동상, 인장, 점토판, 점토 원통 등의 다양한 유물(그리고 그 사진)을 활용하여 정치사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해 또한 돕는다.

이뿐만 아니다. 마르두크 신의 바빌론의 최고신으로 추앙받고, 또 마르두크가 왕위를 잇는 자가 아닌 권력 다툼의 승리자에게 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그린다(제5장). 이런 모습은 신과 신전이 당시 바빌론 문화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또한 네부카드네자르 시대 바빌론 가상 투어를 통해 도시의 각종 신전과 왕궁 등을 살펴봄으로써 찬란했던 바빌론의 도시 문명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7장).

바빌론을 둘러싼 정치적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 유물과 유적 등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고대의 세계적 도시 바빌론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빌론 문화를 널리 받아들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한 이해 또한 커졌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도들, 바빌론의 세부 지도들, 유물과 유적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한 몫 했다. 고대 근동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던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문뜩, 바빌론을 정복하고 반란을 제압한 나라인 페르시아, 그리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요절한 곳이 바로 바빌론임을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생각난다. 어쨌든, 바빌론은 알렉산드로스를 통해 페르시아에 복수한 것이 아닌가, 이 또한 바빌론이 오래도록 고대 세계의 위대한 문명도시였기 때문일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한 후 기록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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