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이주, 생존 -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소니아 샤 지음, 성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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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2018년,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나라인 예맨에서 내전으로 인해 난민 560여 명이 제주도에 무비자로 입국하여 난민 지위를 신청한 일이 있었다. 19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과 2016년 제정된 ‘난민법’에 의거 이들을 받아들이고 또 이들의 난민 여부를 심사할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는 이전에 비해 급증한 난민 신청자 수로 인해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여론 또한 복잡했다.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라는 찬성 여론부터 난민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반대 여론까지 한동안 난민과 이들의 지위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꽤나 뜨거웠다.

<<팬데믹>>에서 보여준 발로 뛰는 취재와 꼼꼼한 연구, 차분하되 설득력 있는 글쓰기로 깊은 인상을 준 소니아 샤. 그녀는 이번 책 <<인류, 이주, 생존>>에서 ‘인류와 생태계의 이동과 이주’를 과학적, 역사적으로 탐색하며, 그동안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이동, 이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 덕분에 멀게만 느껴졌으나 예맨인들의 난민 신청으로 우리에게도 어느새 다가온 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국경 강화 추세 속에서도 계속되는 전 세계의 이주의 흐름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최근 몇 년간 말라리아, 콜레라, 에볼라 등을 주제로 책을 쓴 저자가 ‘이주’를 추적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주와 붙박혀 있는 집안의 역사 때문이었다. 1960년대 인도에서 의사로 일했던 부모님의 미국 이주로 그녀의 집안은 50년 넘게 이주자로서 살아왔다. 자신을 특이한 사람으로 여기는 주위 사람들(소위 본토인)들의 시각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혼란스러웠던 이주 경험은 이주의 흐름과 그 의미를 찾도록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독일로 가기 위해 파키스탄, 이란을 거쳐 터키에 이르고 또 터키에서 소형보트로 에게해를 건너는 위험천만한 여정. 아프리카의 에레트리아에서 남아메리카로 간 뒤 수천 킬로미터의 험난한 지협을 통해 미국, 멕시코 국경을 향하는 목숨을 건 이주. 미국 국경을 통과하지 못해 이주자 검문소를 피해 끝이 없는 사막길을 건너다 비명횡사하는 수많은 사람들. 이러한 처절한 이주의 시도에 대한 일시적 연민과는 달리, 이주는 환영받지 못하는 행위,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은 이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이주는 전염병을 유발하고,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따져보면 사실과는 다른 반이주 정치인들의 거짓 서사에 사람들은 이주에 대한 모호한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명법으로 잘 알려진 18세기 린네. 그의 분류법에서 자연은 생물학적 경계로 구분된 별개의 단위로 존재한다. 생물 각각은 서로 고립된 ‘자신만의 장소’에서 생존하는 것이다. 생물들의 이동, 이주는 설 자리가 없다. 20세기에 득세한 인종 이론과 우생학은 이주의 생물학적 위험을 경고한다. 잡종은 뛰어난 유전적 자질을 퇴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미국의 이민법 제정으로 귀결된다. 생물의 이동 또한 오래도록 자연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다. 동물학자 찰스 엘턴에서 비롯된 레밍의 ‘자살을 위한 이주’라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연구는 동물의 이주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에 기여했다. 그러나 바다와 대륙을 넘나드는 새들과 곤충들의 대규모 이동을 관찰함으로써 생물들에게 있어 이주는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인식이 확대된다.

인류 또한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 인류는 한 곳에 정착하고 지내지 않았다. 인류의 조상들은 이주했다. 다른 집단을 만나 섞이고 다시 이주했다. DNA에서 얻은 과학적 결과는 이를 증명한다. 토착종과 이주종의 뚜렷한 경계는 엄밀히 말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위 현재 존재하는 토착종은 과거 이주종이었다. 현재의 토착종이란 길고 오래된 역동적 뒤섞임의 과정에서의 ‘한 순간’을 의미할 뿐이다. 남아메리카에서 들여온 감자를 생각해보자. 이들도 한때는 이주종이었다. 이제 이주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주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역사에 뿌리를 둔 자연의 힘이다(337p).’

국경장벽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새로운 장벽과 울타리, 출입문이 60여 개의 국경에 솟아올라, 전 세계 40억 명 이상의 이동을 가로막았다(347p). 그러나 장벽은 사람의 이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우회로는 또 다른 이동의 길이 된다. 문제는 경로가 보다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외국인 혐오라는 부정적 인식 속에서 반이주 정책은 또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이동을 막는 국경과 장벽이 계속해서 있어왔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물리적 경계가 아닌 사회적, 심리적 경계를 서로 넘나들었다. 전쟁, 죽음의 위협, 더 나은 부, 모험, 기후 변화 등 저마다 다른 수많은 이유로 인류의 이주는 계속되고 가속화될 것이다. 과거부터 지속된 이주의 본 모습은 앞으로도 지속될 이주의 흐름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제 정말 그래야 할 때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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