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자 당신은 막 격렬한 운동을 끝냈다. 온몸이 땀 범벅, 갈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때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이 그렇게 꿀맛일 수 없다. 금방 갈증이 가시는 느낌이다. 그런데 잠깐, 실제로 물이 혈류에 도달하려면 ‘2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러면 무엇이 당신의 갈증을 해소했을까? 바로 뇌의 ‘예측’이다. 뇌는 물을 마셨을 때의 결과를 예상해서 수분이 혈류에 흡수되기 훨씬 전에 갈증을 가시게 한다. 리사 펠드번 배럿은 이런 흥미로운 예시들을 통해 뇌는 ‘과거 경험을 사용해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한다는 것’을, 즉 인식하기 ‘전에’ 행동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4장).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러한 ‘예측하는 뇌’를 포함한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최신 뇌과학 지식을 (원제대로) 7과 1/2의 강의를 통하여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뇌과학(신경과학) 책들을 더러 읽고 있는데, 저자 이름을 접하는 순간 생소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찾아보니 역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17)로 접한 나와는 구면인 저자였던 것. 인간의 기본 감정은 뇌에 감정회로가 마련되어 있고 자극에 의해 촉발되는 통념적 견해는 틀렸고,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해석하여 감정을 구성한다’라는 이 책의 혁신적이지만 매력적인 견해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이 견해(감정은 구성된 것)는 이 책(<<이토록 뜻밖의뇌과학>>)에서도 접할 수 있다(4장).
내가 특히 선호하는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두껍고 풍부한 책’, 또 하나는 ‘얇지만 단단한 책’.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본문 분량이 많지 않지만(180쪽), 다양한 사례와 연구에 기반하여 설득력 있게 주장하며, 그에 기반한 생각할 거리가 풍부하다. 우선 도입부인 1/2강부터 뇌에 대한 통념을 깬다. 뇌의 짧은 진화사를 통해 뇌의 존재 이유를 신체예산 프로세스(알로스타시스)라는 용어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뇌의 핵심 임무는 흔히 말하는 생각하기가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31p)이다. 이 ‘신체 예산’이라는 개념은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1강 또한 뇌에 대한 통념을 부순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생존 뇌), 포유류의 뇌(변연계, 감정적 뇌), 신피질(이성적 뇌)’로 이루어져 있고, 신피질은 다른 두 뇌를 조절하여 이성적 판단을 내리도록 한다는 ‘삼위일체의 뇌’라는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통념 말이다. 인간의 뇌는 다른 포유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인간 뇌의 득특한 점은 피질 특정 부위의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고도로 강화되었기 때문이지, 인간의 뇌에 새로운 부분이 추가되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2강부터 7강은 최신 뇌과학 연구 결과와 그것이 주는 사회적 교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뇌는 네트워크로 ‘복잡성’ 가지며, 뇌가 유연하게 행동하게 한다는 것(2장). 뇌는 적절하고 올바른 사회적 입력 자극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세부조정 및 가지치기를 통해 발달하므로, 아이에게는 적절한 물리적 및 사회적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3장). 뇌는 과거 경험을 통해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하므로, 예측하는 뇌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4장). 인간은 사회적 종으로서 신체예산을 서로서로 조절하므로(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는 더 많은 타인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5강). 뇌는 다양한 방법으로 배선될 수 있는 ‘기본 뇌 계획’을 갖고 태어나므로,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인간의 본성이란 복수이므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뇌의 보편적 특징은 아니다(6강). 사회적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인간만의 특징은 창의성, 의사소통, 모방, 협력, 압축(5C 능력 세트)에 기반하는데, 뇌는 사회적 현실을 물리적 현실로 착각해 온갖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적 현실을 만드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7강).
우리 뇌는 너무나 복잡하다. 그러나 뇌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 또한 커진다. 이 책은 뇌와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출발점이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분량도 적절하다. 7과 1/2이므로 하루에 한 강씩(대략 25쪽) 읽는다면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읽는다. 일주일 투자해서 인간에 대해 이만큼 알 수 있다면 분명 큰 이익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