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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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전쟁과 혁명이 20세기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체르노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은 여전히 유효하다하지만 체르노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가고 있다기껏 전대미문의 핵사고라는 기억 속 가벼운 스냅샷으로 기억될 뿐이다체르노빌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체르노빌을 반추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다면 인류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것이다체르노빌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체르노빌의 재난을 역사적 맥락에서 폭넓은 시각으로 살펴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체르노빌 원전 4호기의 폭발이라는 끔찍한 지구적 핵재난의 충격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소련의 대응직접적이고도 지속적인 환경적 영향에 온통 정신을 집중하도록 강제한다사건의 원인과 대응 과정사회적 파급력을 역사적 견지에서 차분히 살펴보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르히 플로히의 <<체르노빌 히스토리>>는 체르노빌 대재난을 폭넓은 역사적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체르노빌 사태의 근본 원인인 소련의 과학기술특히 핵발전에 대한 맹신과 성과주의에의 집착체르노빌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된 RBMK 원자로 발전의 기술적 맹점과 발전소 근무자들의 운전 규칙 위반비밀 일변도의 국가 정책과 국제적 비난그리고 비밀주의로 인한 일반인들의 막대한 방사선 피폭체르노빌이 촉발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소련 당국에 대한 비판소련의 해체와 우크라이나 독립에 이르기까지.

 

재난의 근저에는 사회적 원인이 있다체르노빌의 재난을 1980년대 소련의 경제적 어려움정치적 후진성이라는 큰 틀에서 살피는 폭넓은 접근은 이 명제가 참임을 뚜렷이 보여준다과학 맹신주의경제성과 성과주의에 매몰된 소련 관료들의 행정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의 맹점을 가리기에만 급급하고 발전소 관리자들은 이에 응답하여 끊임없는 전력 생산에만 주의를 기울였을 뿐이다결과는 더 참혹하다사고 소식이 해외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했던 소련 관료들의 태도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즉시 알리지 않는 철저한 비밀주의라는 지금까지 체제를 유지해 온 방식은 대피령의 뒤늦은 발령으로 이어져 주민 수십만 명을 며칠 내내 고농도 방사선에 노출시키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근래 탄소 중립 문제로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소위 탈원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체르노빌의 교훈은 의미 심장하다물론 체르노빌을 말하는 것이 곧바로 탈원전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세르히 플로히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보다는 원자력 발전이 주도하는 세계적 경제 상황 속에서 재앙의 가능성이 커짐을 경고하고 있다그리고 체르노빌 이야기에서 국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운영새로운 원자력 기술에 대한 국제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교훈으로 이끌어낸다원자력 발전의 찬반을 떠나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제안이자 요구사항이다체르노빌 이야기를 읽고 어떤 입장을 견지할 것인지는 이제 각자의 몫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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