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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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를 취할 곳으로 히틀러는 4년 전 서방 정복을 한나절에 달성했던 아르덴을 다시 선정했다. 다시 한 번 독일군이 돌파를 하게 될 것이었다. 이번에는 북쪽으로 틀어서 안트베르펜을 점령하게 될 것이었다. 영국군은 고립될 것이고 또 한 번의 됭케르크 철수가 일어나 영국인들은 어쩌면 미국인들까지 절망해 포기하게 될 것이었다.

  - A.J.P.Taylor,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384-385pp



1944년 하반기. 동부전선에서는 소련의, 서부전선에서는 연합군의 공세에 밀려 개전 후 짧은 시기에 획득했던 나치와 제3제국의 영토는 어느새 전쟁 전으로 돌아갈 위험이 대두되었다. 전선의 위기 상황과 신체적, 정신적 위기 속에서도 총통의 ‘전략적 영감’은 다시 한 번 발휘되는듯 했다. ‘방어 태세로는 국면을 전환시킬 수 없다. 총공세로 연합군의 허를 찌른다!’ 과감한 전략이자 승부수. 히틀러가 거둔 과거의 승리, 과감한 자신의 전략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모습에 일부 측근들은 제3제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여겼다.

현 시점에서 연합군은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몽고메리도 적이 더 이상 대규모 공세를 펼칠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판단했으니 말이다. 히틀러의 돌파 지점은 미군의 방어가 비교적 약한 아르덴이었다. 대공세의 시작인 1944년 12월 16일로부터 정확히 3개월 전인 9월 16일, 볼프샨체(늑대 소굴)에서 히틀러의 예상치 못한 계획이 발표되기 전에는 상급대장 요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계획을 알지 못했다. 계획 발표 후 전략 수립 과정에서도 소수만 참여했을 뿐이다. 국방군 총사령관인 카이텔, 서부 최고 사령관 룬트슈테트조차 참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비밀 엄수에 사활이 걸린 히틀러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흥미진진하게 조망한 <<제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디데이>>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 전쟁의 흐름을 바꾼 개별 전투에 대한 정확한 고증,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전투 묘사로 전쟁사 서술의 전범을 보여준 바 있는 앤터니 비버. 그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전투가 바로 히틀러의 마지막 승부수, ‘아르덴 전투’, 다른 표현으로는 ‘벌지전투’이다.

앤터니 비버는 1944년 8월, 노르망디 전투로 전세를 역전시킨 연합군의 파리 해방 이후 이야기로 시작하며 승리에 도취 된 연합군 진영을 살핀다. 그리고 아헨전투, 휘르트겐 숲 전투를 통해 당시 전선의 상황과 아르덴 지역을 포함한 독일-벨기에 접경 지대의 지리적 특징을 다룬 후 독일의 아르덴 공세를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독일의 공군이 거의 와해 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아르덴 지역의 울창한 삼림은 연합군 공군을 피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기습 작전을 펼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참모들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못했다. 룬트슈테트와 모델은 히틀러의 ‘대형 해결책’이 ‘지도위에서나 가능한 환상’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연합군 내부에서의 분열이 날마다 커지고 있어 이번 전략이 독일에 유리하다는 괴벨스의 헛소리는 더더욱 믿지 않았다. 나치 고위 간부들은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냥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누구도 히틀러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1944년 12월 26일 아르덴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 공세에 대한 비밀 엄수, 대규모 군대의 성공적 이동, 아르덴 공세에 관한 정보를 취합했음에도 무시한 연합군의 안일한 상황 판단은 초기 독일군의 성공적인 진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연합군, 특히 미군의 끈질김과 용기는 예상외의 전개를 낳았다. 4년 전과 달리 연합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격로의 중요한 교차점에 있는 생비트와 바스토뉴 함락 작전은 거센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다만 생비트를 뒤늦게 함락시켰을 뿐이다.

12월 23일 날씨가 좋아지면서 연합군의 공중 폭격과 공중 보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뫼즈강 근처까지 다다른 독일군은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며 연합군의 공세에 점점 밀려 후진하게 된다. 한편 공중 보급의 성과와 패튼의 제3군의 진격으로 12월 26일 독일군의 바스토뉴 포위를 허물고 1월 중순 독일군은 퇴각하고 만다. 히틀러의 전략적 영감은 연합군의 병참 능력, 신속한 대응과 전투 능력은 고려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의 오판은 역설적으로 독일 예비 전력을 모조리 쏟아부음으로써 오히려 종전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히틀러의 결정과 전투 준비 과정, 연합군 장성들 사이에서의 오판과 알력 다툼(특히 몽고메리와 미군 장서들), 독일군과 미군 병사들의 치열한 전투 묘사와 비참한 죽음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마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여러 장의 지도, 전투 서열과 용어 설명 등을 담고 있는 친절한 부록 덕분에 전투의 세부적 이해뿐만 아니라 전투의 큰 그림 또한 그리는 데 매우 유용했다.

아르덴 대공세로 인한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죽음, 특히 포로들을 기총소사로 대량 학살한 독일의 파이퍼 전투단에 의한 말메디 학살 사건, 이에 분노한 미군의 독일 포로에 대한 보복 살인에 대한 묘사는 전쟁의 잔인성과 잔혹함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전쟁사를 읽는 이유야 각자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몰인간성에 대한 자각 또는 각인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전쟁은 현재에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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