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비록 깊이 있게 하진 않더라도) 한 번쯤은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고민이 일상적이진 않은데, 우리에게 있어 근본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가 살아가면서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면 이 혼란은 자신이 아닌 타인, 특히 부모와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과거 10대 시절로 돌아가보자. 10년 넘게 자신의 부모님이라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 친부모가 아니라면, 더군다나 자신의 남동생 또한 친남동생이 아니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질문이다. 2차 대전에서의 패전 후 7년 정도가 흐른 뒤의 독일, 이 책의 지은이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하 잉그리트)이 맞딱드린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다.

 

건강보험증, 출생증명서에는 에리카 마트코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집안 일을 봐주는 사람에게 자신이 위탁 양육되었음을 듣게 된 후 잉그리트는 혼란스럽긴 했으나 그 이상의 진실을 밝힐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마음속에 물음과 의문을 마음 한구석에 치워놓은 채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1999.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 갑작스레 적십자로부터 온 전화 한 통에 오래 묵혀두었던 의문들. 이제야 자신이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어쩌면 두려워 회피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잉그리트가 어쩌면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고, 한편으로는 후련한 이야기이면서, 독일의 뼈아픈 현대사를 다시 한 번 목도하게 되는 역사책이기도 하다.

 

잉그리트의 삶은 우생학과 인종주의에 의해 좌우되었다. 20세기 전반기 널리 퍼진 우수 인종의 번성으로 인간의 유전형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우생학의 신조와 아리아인(또는 북유럽 인종)이라는 우수한 형질의 인종인 독일인이 세상을 지배할 운명이라는 나치의 뿌리깊은 신념은 나치 친위대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레벤스보른(생명의 생)’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다. 잉그리트는 자신의 위탁부모를 위한 인수증 형식의 1944(당시 3) 예방접종 증명서에서 레벤스보른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더 많은 정보를 찾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나치 독일의 어두운 과거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레벤스보른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레벤스보른 출산 시설은 명목상 독일인구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벤스보른의 진짜 목적은 순수 아리아 인종의 재생산과 확대에 있었다. 힘러가 인종적 순수성을 증명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친위대는 이 목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힘러는 인종적으로 순수한 친위대원들은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아리아인 자녀를 여러 명 두길 권했다.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 중 아리아인 혈통으로 인정되지 않은 아이는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1941년 인종적으로 순수한 아기를 수만 명 생산해낼 것이라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목표 도달 여부가 불분명해지자 힘러는 나치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인종적으로 가치 있는아이들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지시는 잉그리트를 포함한 수많은 아기와 어린이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잉그리트는 주위의 도움과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유고슬라비아의 장트자우어브룬에서 태어났음을 알게 되고 그곳으로 간다. 몇 번의 낯선 만남과 유전자 검사로 분명해진 일가 친척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독일로 오게 되었을 당시 상황을 알게 된다.

 

19428월 당시 나치 점령 하의 유고슬라비아는 억압과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첼예의 운동장에 모인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은 강제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철저한 인종검사를 받게 된다. 바로 이 검사에서 채 돌도 되지 않은 잉그리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독일 혈통의 용모 기준에 부합되어 독일로 오게 되어 자신의 위탁부모에게 입양된 것이다. 잉그리트는 포함한 수많은 아이들의 운명이 일 순간 바뀌게 된다.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잉그리트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양부모와 친부모에 대한 회한 등 다른 이들이 겪지 못할 감정적인 번민에 휩싸인다. 잉그리트는 1인칭 시점에서 이러한 복잡한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결국 정체성은 자신이 만들어 온 것임을 받아들인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내가 내리는 선택으로 정의된다는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레벤스보른의 다른 희생자들과 더불어 레벤스보른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노력의 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 관련 여러 책을 읽어왔지만, 이 책은 또 다른 생각과 감흥을 준다. 나치의 인종주의와 비인간적 행위가 수많은 자국인들과 주변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잉그리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그 전쟁의 여파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는 전쟁사와 더불어 그것이 당시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깨닫게 한다.이와 더불어 이 사실 또한 더욱 명확함을 알게되었다.. 자신과 타인을 뚜렷이 나누어 타인을 열등하게 보는 것은, 그 기준이 인종주의든 단순한 편견이든 갈등과 폭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잉그리트의 표혀대로 이제 역사의 교훈에서 배워야 할 때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