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신동원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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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를 확인하고 이제는 꽤나 오래된 학부 때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눈길이 잘 안가는 책장 구석을 뒤적여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고 손때가 많이 탄신동원 교수의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라는 책을 집어들었다책 이곳저곳의 필기를 다시 한 번 오랜만에 훑어보며 학부 시절 과학사 강의 교재로 활용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자세한 내용이야 거의 잊어버렸을지라도 과학 문명에 관한 한 세계적 수준과 비교해볼 때 항상 뒤처지는 정도로만 생각한 한국 전통 과학 문명의 가치를 곱씹어 볼 수 있게 해주었던나름의 또렷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국과학문명사’, 그 시기나 범위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방대한 내용을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해당 분야의 전공자라 할지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한국의 과학과 문명’ 프로젝트와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의 영문판 한국의 과학사 문명’ 총서 10권의 출간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깊고 넓은 한국과학문명의 의미와 가치를 가독성 있고 생생하고 전달하는 과업의 적임자가 아닐까바로 그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신동원 교수이다.

 

우선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고려조선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순서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한국 근현대 과학사만 6부에서만 따로 다룰 뿐, 1~5부는 한국의(동양의세계를 파악하는 관점과 가치가 반영되어 있는 하늘자연기술과 발명이라는 다양한 주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분류 아래 역사적 과학 문명들이 촘촘히 들어가 있다예컨대 하늘이라는 주제 아래 고구려 고분벽화의 별자리신라의 첨성대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자격루칠정산 등을 다루는 식이다덕분에 해당 분야(예컨대 지도 제작 분야)에서 고려와 조선이 어떻게 관련 맺고 있으며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다시 말해한국의 과학 문명을 일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서술 방식인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내용의 풍부함과 탁월함이다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친절한 서술 방식으로 우리 과학 문명의 몰랐던 사실들을 요모조모 알려주는 솜씨는 몰입도를 배가시킨다예컨대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신경쓰지 않았던 만원 지폐 뒷면의 배경인 별자리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1395년 제작그림을 자세히 살피고 해석하고 의미를 찾고또 그 그림이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설명 등은 우리 과학 문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이뿐만이 아니다세계 역법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칠정산의 제작 과정과 의미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차이대동여지도의 제작 과정 및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전국지도들조선시대 3대 물고기 연구가 김려정약전서유구의 조금씩 다른 물고기 연구별순검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법의학의 뼈대인 <<신주무원록>>과 <<증수무원록>>... 등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한국 과학 문명의 다채로움과 재미는 우리 과학 문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보통은 한국의 과학 문명이라고 하면 뭐 그런 게 있기나 해?’라는 무시하기식 접근이 다반사일테지만간혹 그 반편향으로 측우기금속활자 등 최고나 최초의 타이틀에 집착하여 우리 조상들에게는 당시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단한 과학 문명이 있었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접근을 보이기도 한다이에 대해 신동원 교수는 매우 균형잡힌 서술 관점을 택한다측우기와 금속활자 기술이 세계 과학 문명에 끼친 영향이 미미함을 지적하며오히려 일본에 납치된 조선 도공들이 이룩한 자기 기술은 세계 문명에 간접적으로인삼과 <<동의보감>>은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그렇지만 신 교수는 우리 과학 유산의 독자성보다는 교류의 관점을 더욱 중요시 여긴다.

 

한국과학문명의 가치는 세계에 끼친 영향보다는 세계 문명의 수용과 활용변형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빛을 발합니다(842p).

 

우리 과학문명의 거의 모든 분야들천문학의학수학지리학인쇄술도자기 제작술 등에서 선진문명의 영향을 받아들여 적용하고 변용하고 재창조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독창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지 않는 이러한 관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이 두꺼운 책은 시종일관 세계 과학 문명 속에서의 한국 과학 문명이라는 관점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이 책은 두껍다본문만 800쪽이 훌쩍 넘는다벽돌책에 가까울 정도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한 번에 다 읽으려 할 필요는 없다사전처럼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겨울철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다 문뜩 온돌에 대해 알고 싶을 때는 온돌을 찾아보면 된다친절한 설명과 자세한 그림과 사진을 통해 온돌의 구조와 과학적 원리온돌의 역사우리 온돌의 문제점 등 온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어쩌다 알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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