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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의 기술 - 한평생 호흡하는 존재를 위한 숨쉬기의 과학
제임스 네스터 지음, 승영조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2월
평점 :

‘호흡에 무슨 기술이 필요 있나?’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고 든 생각이다. 누구나 다 하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숨쉬기에 특별한 기술이 있다니, ‘유사 과학’ 관련 책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 대한 평이 없어, 아마존에 들어가서 원서를 검색했다. 웬걸, 높은 평점은 그렇다 치고, ‘내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평이 굉장히 많았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저자가 낯익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역시나 그랬다. 그는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의 저자 ‘제임스 네스터’였다. 작년, 흥미로운 제목과 믿을 수 있는 역자를 보고 선뜻 읽게 되었던 이 책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흥미진진함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전 책이 ‘프리다이빙’이라는 정말 생소한(동시에 매력적인)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호흡’이라는 전혀 낯설지 않은 주제다. ‘프리다이빙’과 ‘호흡’,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주제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매우 밀접하다. 맨몸으로 10분이 넘게 수십미터 깊이의 바다 한가운데서 활동하는 데는, ‘호흡의 기술’(한 번의 호흡)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네스터도 서문에서 프리다이빙 탐구 와중에 호흡에 대해 폭넓게 탐구했다고 하니, 그의 두 권의 책은 프리다이빙의 충분조건으로서의 호흡을, 호흡 기술의 생생한 활용 사례로서의 프리다이빙을 다루는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봐도 좋겠다.
이 책은 ‘잃어버린 호흡의 기술과 과학에 대한 과학적인 모험’(20p)에 관한 이야기다. 이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는 호흡을 ‘숨을 쉬면 살아 있는 것이고, 숨이 멈추면 죽은 것’이라는 이진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21p).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제임스 네스터는 세계 곳곳의 펄머 노트(pulmonaut-호흡탐험가)들을 연구하고 직접 찾아가기도 하며, 호흡기학, 심리학, 생리학 등 최첨단의 과학 연구 결과를 폭넓게 활용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사이막 만곡증과 심한 왼쪽 콧구멍 막힘증으로 고생하고, 코곁굴(부비동) 기형인 저자 자신이 코 호흡과 입 호흡을 비교하기 위해 코를 실리콘으로 틀어 막고(진짜 공기 분자 하나 안 들어가도록 막는다!) 열흘이 넘도록 강제 입 호흡만 하는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것도 자진해서.
1부에서는 저자의(그리고 또 한 명의 스웨덴인의) 자학적이면서도 성실한 실험을 바탕으로 입 호흡이 지구력과 에너지 효율 저하, 수면무호흡 증가, 만성 불면증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검증한다. 2부에서는 드디어 코를 막아놓았던 실리콘 마개를 뽑고 입 호흡으로 엉망이 된 기관지를 비롯한 신체 기관을 살피며, 코 호흡의 건강상의 이점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건강한 호흡을 첫 단계인 묵은 공기를 최대한 배출하는 날숨의 중요성, 느리고 더 적게 숨쉬기, 호흡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씹기의 중요성 등 우리가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코 호흡으로 하는 숨쉬기(와 씹기)의 비밀들을 들려준다. 3부에서는 구체적인 호흡의 기술과 수행법을 다룬다.
저자가 말하는 호흡의 중요성, 호흡이 인체 기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많은 부분 좋은 호흡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은 엄밀한 과학적 접근과 분석, 충분한 사례 덕분에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접근법을 취한 내 생각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소개하고 있는 여러 호흡의 기술들을 직접 시도해보는 것은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니 입 호흡을 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아서 일단 입 호흡이 아닌 코 호흡으로 숨쉬기를 해볼 작정이다. 호흡의 기술이 있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저자의 글솜씨가 워낙 유려하고 흥미진진해서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로 한결 정신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실리콘 코 마개를 빼고 맡게 되는 냄새의 생생함을 어쩜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의 이런저런 냄새가 선명한 천연색 폭죽처럼 머릿속에서 폭발한다. 냄새가 너무 반짝이고 경이로워 환히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치 조르주 쇠라의 그림 속 수많은 빛깔 점들처럼(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