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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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이다동시에 매력적인 질문이기도 하다일급 학자들이 이 난제에 직간접적인 나름의 답을 내놓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이 책 마지막 장에는슈뢰딩거를 포함하여 할데인 등 몇몇 학자들의 대답을 간략하게 언급하는데이들처럼 연구 분야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과학적 명망이 없다면 가히 대답하기 어렵거니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폴 너스’, 세포(구체적으로는 세포 분열)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국내에 번역된 저술이 없으니 사유의 깊이나 글솜씨 등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그러니 비교적 얇은 책으로(하긴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또한 얇다이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리겠다니 내심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기우였음이 분명히 느껴졌다싯다르타 무케르지엘리스 로버츠데이바 소벨이라는 걸출한 작가들의 찬사가 흔해빠진 주례사가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개념의 명확함풍부한 내용자신의 연구에 기반한 생생한 사례와 통찰까지얇은 책에 이 많은 내용이 그것도 꽤나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다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얇지만 단단한 책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다.

 

폴 너스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생물학에 단단히 뿌리박고 생명에 대해 논하고 있다논의 방식에서의 특이한 점(또는 구성상의 독특한 점)은 생명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다섯 단계, ‘세포유전자진화화학으로서의 생명정보로서의 생명라는 단계를 차례로 밟아 나간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뒤 한 장을 이러한 생명에 대한 생물학의 최신 지식을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일종의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과학기술학)적 고민과 물음을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며 대미를 장식한다.

 

5단계 중 세포유전자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세 단계에 대한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친절하다그간 이러저러한 교양과학 책을 읽어 온 (나같은독자들에게는 생물학의 핵심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면서 동시에 효모를 대상으로 세포 분열 주기를 밝히기 위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생생한 과학 연구 과정을 엿보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줄 것이다그리고 배경 지식이 없는 초심자들이 읽기에도 개념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4,5단계인 화학으로서의 생명과 정보로서의 생명에 대한 논의는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롭게 읽기도 했고지적 자극을 한껏 불러일으킨 부분이다세포의 생명의 한 표현으로서의 화학반응은 대부분 효소가 촉매로 작용하며효소를 이루는 단백질 중합체 사슬은 복잡한 삼차원 구조를 만들고각 단백질은 독특한 물리적 형태와 화학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DNA와 그 분자구조가 유전을 설명하는 방식유전자 조절 과정을 통해서 생명을 정보라는 관점으로 살펴보는 부분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하였다동시에 앞으로 더 탐구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폴 너스는 세 가지 원리로 생명을 정의한다그 원리는 첫째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하는 능력둘째생명체가 경계를 지닌 물리적 실체라는 것셋째살아 있는 실체가 화학적물리적정보적 기계라는 것이다이 원리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저자는 보다 폭넓은 관점을 취한다생명과 무생명의 경계를 뚜렷하다고 할 수는 없다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거의 모든 생명체(남세균고세균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생명들에게 의지한다고 볼 때의존하는 정도에 따른 일종의 생명의 스펙트럼이 있고결국 이들 모두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바이러스도 생명인 셈이다)

 

이러한 폭넓은 관점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진화적 뿌리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가깝거나 다소간 먼 관계로 이어져 있으므로인간은 다른 생명과 공존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생명을 이해해야 한다’(220p). 그리고 이 책이 생명에 대한 이해의 훌륭한 시작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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