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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 - 바이러스, 투자 버블, 가짜 뉴스 왜 퍼져나가고 언제 멈출까?
애덤 쿠차르스키 지음, 고호관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2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g/i/gibahong/1AD6Vq3M.jpg)
전염, contagion. 작년부터 너무나 친숙해진 단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비단 감염병의 ‘전염’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물학적 전염보다는 ‘사회적’ 전염의 과정 및 동역학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SNS를 통해 수많은 정치적 견해들이 전파되고 이를 접하는 불특정 개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미치고, 오피니언 그룹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현실, 더군다나 그 견해들이 구체적이지도 않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전염 contagion’과 ‘아웃브레이크 outbreak(전염의 발발)’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다. 수학과 역학을 전공한 저자는 ‘전염과 아웃브레이크’를 감염병 외에 금융 위기, 폭력,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의 가짜뉴스, SNS, 멀웨어malware 전파 등의 사례에 폭넓게 적용한다. 이를 통해 ‘어떤 것이 퍼져나가는 이유’(전염의 원리)와 ‘아웃브레이크가 그런 양상을 보이는 이유’를 살펴보는데, 저자는 전염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모든 사회 현상에 공통적으로 적용가능한 하나의 전염의 원리와 법칙을 적용하지 않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몇몇 아웃브레이크에 공통적으로 적용할만한 역학의 기본 원리가 있지만, 오히려 개별 아웃브레이크는 그 나름의 독특한 전염 양상을 띈다.
본론 1장은 열대 의학의 선구자인 ‘로스’에서 시작한다. 로스는 전염병을 복잡한 상호작용 과정으로 다루는 ‘동역학적’ 연구 방식을 처음으로 취하여, 수학식을 이용한 ‘질병의 전파를 나타내는 개념 모형’을 만들어낸다. 그의 영향으로 이후 연구자들은 질병 전파의 수학적 모형인 ‘감염대상군(Susceptible)-감염군(Infectious)-회복군(Recovered)’을 뜻하는 유명한 ‘SIR 모형’을 개발하는 등 수학적 모형에 기반하여 전염을 다루는 로스의 역학적 접근 모형은 전염 연구 방법의 기초가 된다.
2~7장에서는 1장에서 강조한 역학의 모형을 중심으로 다종다양한 사회적 전염 현상을 살펴본다. 네트워크 이론을 다루고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고 신선했던 2장에서는 에이즈 전염과 금융 위기에서 보인 전염 양상을 비교, 분석한다. ‘전염’을 감염 재생산 지수 ‘R’과 ‘R’에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소 DOTS(기간 duration, 기회opportunities, 전파 확률 transmission probability, 감염될 수 있는 사람의 비율susceptibility)로 분석한 후, 이를 다시 사람과 금융기관들 사이의 관계망을 나타내는 ‘네트워크’ 구조와 연결지어 전염을 증폭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
3장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비만, 정치적 견해 같은 행동과 사고의 전염성에 대해서, 4장은 시카고에 만연한 폭력 사건을 전염의 양상으로 판단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한 노력과 성과를 다룬다. 5장은 개인적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sns, 인플루언서의 영향 및 가짜뉴스의 전염의 양상을 다룬다. 몇 가지 새로웠던 통찰은 인플루언서 한 명의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사실, 정보의 소비는 자신과 비슷한 견해에 더 많이 관심을 보이고 이는 알고리즘에 의해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메이리방 효과’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언론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정보 아웃브레이크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만큼, 이들이 악의적인 가짜 뉴스, 역정보의 전파에 저항성을 더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며, 전파 과정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6장은 멀웨어나 랜섬웨어의 전염 과정을, 7장은 유전자 염기서열 비교 분석을 통해 바이러스와 질병의 기원과 전파, 확산을 연구하는 데 활용되는 계통분류학을 문화의 전달과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인다.
모든 연구가 그렇겠지만, 사회적 전염 양상의 연구는 충분하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진행되었던 페이북에서 감정의 전파를 관찰한 연구의 데이터 수집은 피실험자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데이터 수집과 사생활 침해의 경계가 매우 흐릿함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내밀한 사생활 자료가 어느 순간 수집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주 적절하게 책 말미에 이 점을 언급하며, ‘시민 참여 과학 계획’ 같은 자발적으로 연구 데이터 수집에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주로 질병의 전파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용어인 ‘전염’을 사회의 다양한 현상에 적용 가능하며, 역학의 원리를 활용하여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한 분야의 시각과 연구방법이 다른 분야에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이론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이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다양한 실제 사례 덕분에 읽기에 부담 없는 흥미로운 책임이 분명하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