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랩걸이 뭔가 했더니 영어로는 lab girl,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저자를 지칭합니다.

천재 여성과학자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어릴 때 읽던 딱딱한 위인전을 떠올렸는데, 웬걸요!

과학자가 이렇게 책을 재미있게 써도 되나요? 이렇게 글을 잘 쓰면 전문작가로 전업해도 되겠어요.

자전적 이야기인데 소설같이 흥미진진합니다. 실화라고 생각하니 더 재미있네요.

두께가 좀 있는 책인데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금방 다 읽었습니다. 다 읽어버려 아깝네요.


 


 


저자 호프 자런은 2016년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린 저명한 여성과학자입니다. 아버지가 과학자라 실험실을 놀이터 삼아 자랐고, 과학자로서 큰 상도 받고 종신교수직도 보장받는다고 해서 원하는 실험실에서 여유롭게 실험을 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제 착각었네요. 학교에 진학한 이후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10개씩 했고, 연구비를 보조받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실험을 계속 해야했습니다. 이런 힘든 과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저자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습니다. 이런 센스와 긍정적인 마음이 힘든 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 것 같아요.


이 책은 총 3부로 나뉩니다.

1부 뿌리와 이파리, 2부 나무와 옹이, 3부 꽃과 열매입니다.

식물의 성장과정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교차해서 썼는데 이 부분이 꽤 흥미롭습니다. 식물이 이렇게 매력적이고 인간과 비슷한지 몰랐거든요. 식물에 대한 부분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저같은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호프는 소울메이트이자 실험동료인 빌을 만나면서 과학자로서 날개를 달게 됩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실험을 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난 거죠.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정신적인 문제도 겪는 호프, 뛰어난 실력과 직관력을 가지고 있지만 불완전한 손 때문에 아직도 위축된 빌. 이 두 천재는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격려하며 식물을 연구하는데 헌신합니다.

호프는 연구지원서를 여기저기 제출해 지원을 받게 되면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 연구비로 호프와 빌의 월급을 받는거죠. 처음에는 지원해주는 곳이 적어 자금부족으로 장비를 구입할 수도 없고 원하는 연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발휘해 돈을 아껴가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며칠동안 번갈아 운전해서 학회에 참석하고, 고작 몇 달러를 아끼기 위해 더러운 숙소에서 잠을 잡니다. 폐기된 실험실에서 실험도구를 가져오면서 행복해하고, 고장난 장비도 버리기 아까워합니다. 이들은 연구를 위해서는 장소도 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알래스카까지 가서 구덩이를 파고 식물을 연구합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열정이 있기에 과학계의 발전도 있는거겠죠.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호프는 교수의 신분으로 종신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입장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된 삶을 보장받게 됩니다. 하지만 빌은 다릅니다. 빌이 연구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호프가 연구계약을 따면서 빌의 월급을 함께 요청해야합니다. 호프는 이 책에서, 빌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없음의 부당함을 자주 호소합니다. 빌은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계약기간동안만 월급을 받는 프리랜서 과학자이기 때문이지요. 빌의 실력과 경력으로 보건데 안정된 직업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되면 호프와 함께 원하는 연구를 할 수가 없겠지요. 아마 그 때문에 호프가 빌의 생활을 계속해서 걱정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상황이 좀 나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일하는 여성이 겪어야하는 유리천장은 미국에도 존재하네요. 실력으로 이 모든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하는 저자가 멋집니다.

이 책은 식물에 관한 이야기와 저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됩니다.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는 식물(나무, 꽃, 풀 등)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인간세계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고, 이렇게 다양한 매력이 있기에 저자가 매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호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습니다. 이 부분이 3부 꽃과 열매입니다.

사랑으로 더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천재수학자를 만나 결혼해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은 역시나 식지 않으며 여전히 빌을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이 세상에는 열정이 가득한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연구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훌륭한 과학자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나서 신기했던 것은 바로 이 표지 부분이었어요.

단순한 책날개가 아니라 펼치면 멋진 작품이 됩니다.


 

 



뒤집어보니 짠! 멋진 그림이 있습니다.

식물분류학자이며 식물세밀화가이기도 한 신혜우 작가님의 '참나무겨우살이'라는 작품입니다. 2014년 영국왕립원예협회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책과 잘 어울리는 표지선정에 감탄했습니다. 책 내용 이외에도 이런 볼거리가 있어 더 재밌고 소장가치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