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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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떠올리면 학창시절에 배웠던 '실학자' 혹은 '실학의 집대성'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유교사상에 젖어있던 관료들 사이에서 실학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 당시로는 충격적인 일이었을테지요. 정약용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정조의 후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실학은 정약용이 20대 초반에 심취했던 서학, 즉 천주학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이기에 '천주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정조가 승하하자마자 정약용은 18년의 귀양살이를 하고 57세가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 책은 해배되어 고향에 돌아온 정약용이 자신의 집 대문으로 들어오면서 '기쁘지 아니한가?'하고 자신에게 묻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정약용은 마냥 기쁘지는 않습니다. 그의 여인들 때문이지요.




조선시대에는 남존여비사상이 있어 양반남성이 많은 여인을 거느리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들은 마냥 행복했을까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가족을 이루고, 성님 아우 하면서 살갑게 지냈을까요.


정약용의 똑똑하고 꼿꼿한 아내, 혜완은 남편이 돌아온 것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부담감이 있습니다. 남편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데려온 여인, 진솔과 그 딸 홍임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혜완은 진솔과 홍임을 다시 강진으로 내려보냅니다. 정약용은 그 사실을 알고도 내색할 수 없고 다만 인편으로 진솔과 홍임의 소식을 계속 전해들을 뿐입니다.


이 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정약용의 생애를 다룹니다. 그 안에 혜완과 존중하며 지내온 세월, 진솔과 아이를 낳으며 살아온 사연 등이 나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충성하는 마음과 대나무같은 기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혜완과 진솔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약용을 보필합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한 지아비를 모십니다. 쉽게 말하면 본처와 첩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정약용의 여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그녀들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과 시대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그 시절, 그녀들은 그녀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혜완의 딸 홍연이는 어머니의 사랑과 교육을 잘 받아 당찬 여성으로 자랍니다. 홍연은 아버지를 이해하며 진솔을 위하는 배포까지 보입니다. 

진솔의 딸 홍임이는 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이 진솔을 닮았습니다. 홍임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내 옹의 제안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을 강진에 있는 여자아이들에게 전해주려 합니다. 무료로 글을 가르치고 위생과 살림살이도 가르쳐주는 교사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정약용의 여인 혜완과 진솔은 그 딸들까지 이르러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정약용이 꿈꿔온 만민이 평등한 실학사상은 물론 그 자식대인 홍연이와 홍임이 시대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홍연이와 홍임이의 아이들 세대, 또 그 아이들 세대, 또 그 아이들 세대가 반복되며 정약용이 추구한 사상은 마침내 민주주의로 이뤄지게 됩니다. 물론, 지금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선시대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게 사실이지요.


시대를 초월해 만민을 사랑하는 꿈을 꾸었던 정약용이 존경스럽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 힘들게 살았지만 그가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았기에 오늘날의 우리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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