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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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1950년에 출간됐습니다. 무려 50년 전에 쓴 소설을 지금 읽게 되다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전쟁 중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니 식상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 소설은 지금까지 읽었던 전쟁 소설과는 전혀 다릅니다. 여성의 인권이 낮았던 시대에 한 여성이 주위 사람과 환경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이로운 이야기입니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레인보우퍼블릭북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는 '앨리스'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빨간 스포츠카를 모는 부유한 여성이 앨리스일거라 짐작했죠. 그런데 책장을 계속 넘겨도 앨리스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표지로 돌아와 원제가 'A town like Alice'인 것을 발견했고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앨리스는 '앨리스 스프링스'라는 도시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젊은 여성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묘사되는 앨리스 스프링스는 어떤 곳일까요. 내가 사는 도시를 그곳처럼 바꾸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흥미를 가지고 계속 읽어봤습니다.





이 책은 변호사 노엘이 그의 의뢰인 진 패짓의 신탁을 관리하면서 알게 된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갑자기 큰 유산을 받게 된 진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유산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는 과정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걸크러쉬를 제대로 보여주는 신여성 캐릭터입니다. 인종차별, 남녀 차별이 존재했던 194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영국 아가씨 진은 말레이에서 일하다가 전쟁을 겪으면서 포로가 됩니다. 영국 여성들과 아이들이 포로가 됐는데 여자 수용소가 없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일본 군인들은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에 여자 수용소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걸어서 다른 곳에 가게 합니다. 소설에서는 6개월간 이런 여정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서른 명 정도였던 그들은 6개월 후 열 명이 됩니다. 진은 그들의 리더가 되어 일본군, 마을의 촌장들과 능숙하게 협상하고 구성원들의 목숨을 구합니다. 진이 영어, 현지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지요. 그들을 감시할 군인이 죽자, 그들은 한마을에 정착해 쌀농사를 도우면서 3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책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에 비추어볼 때 실제로는 더 열악합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서 네덜란드 여성과 어린이 80명이 이런 문제로 수마트라 전역을 2년 동안 걸어 다녀야 했고, 이 여정이 끝날 때에는 서른 명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일본 치하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기에 전쟁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진은 큰 유산을 받게 되자 노엘과 상의해 자신들을 살려준 말레이의 마을로 돌아가 우물을 만들어 줍니다. 자신의 재산을 가치 있게 쓰고 싶었던 것이죠. 우물을 파고 나면 영국으로 돌아와 좋은 집, 좋은 옷을 사고 평생 화려하고 편안하게 살 계획을 세울 거라 생각했는데 진은 걸크러쉬의 끝판왕을 보여줍니다. 전쟁 중 자신을 도왔던 호주 남자 조 하먼을 찾아 호주로 날아갑니다. 조는 진과 결혼하기 위해 이사를 계획합니다. 조가 살고 있는 윌스타운은 소를 치는 목동에게는 좋은 환경이지만 젊은 여성에게는 지루한 곳이니까요. 하지만 진은 자신 때문에 조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윌스타운을 앨리스 스프링스처럼 바꾸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한 도시를 이렇게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다니 놀랍네요. 이는 한 여성의 큰 결단과 거액의 유산이 있기에 가능했지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린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는 진이 포로일 때 함께 한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 자신들이 포로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대해 준 원주민들, 자신들을 감시하는 입장이었던 일본 군인과도 도움을 주고받는 인간애 등이 나옵니다. 전쟁 중에도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 사람들과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비상식적인 일들이 대조를 이루면서 이런 비극은 다시는 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이 받은 큰 유산은 조부가 호주에서 이룩한 것들인데 진이 다시 호주로 돌아가 도시를 번성하게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50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잘 읽은 것은 저자 네빌 슈트가 대단한 작가이기 때문이겠지요. 더불어 50년 전의 원작을 지금 읽어도 재미있게 번역해 준 번역가 덕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책 뒷부분 책날개에 이 출판사는 번역가의 지위 향상과 처우 개선을 지원한다는 문구를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좋은 번역가가 있어야 독자들이 양질의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레인보우퍼블릭북스의 책들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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