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농부
변우경 지음 / 토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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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농부'라니 재미있네요. 30년 서울 생활에 지친 저자가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직장 생활이 힘들고, 아이는 아토피가 생기고 돌파구를 찾다 보니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부모님은 반대하시지만 슬쩍 내려왔으니 그야말로 '어쩌다 농부'입니다.

'서울은 사는 게 고생이지만 여기는 농사만 고생이잖니껴'라는 문구가 재미있네요. 서울살이에 지친 저자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시골에 살면 농사만 고생스럽게 지으면 다른 부분들은 다 만족스러운 걸까요. 궁금해하며 읽어봤습니다.



귀농해서 억대 연봉을 버는 성공한 농부의 스토리는 없습니다. 저자는 어슬렁거리며 시골에 사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요. 처음 내려와 삼 년 동안은 직장 생활하듯이 농사를 열심히 지어봤지만 하늘의 뜻(자연현상)에 따라 한 해 농사가 결정되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합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도 귀농 생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나 성공기가 아니라 유유자적하는 농부의 생활입니다. 한 해 농사를 다 마무리하고 나서 농협에 빚을 갚고 나니 남는 것도 없다는 부분에서 안타깝기도 한데요. 잘 생각해보면 그래도 농사를 지어서 생활은 된다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자는 방학(겨울)이 있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며 동네 마실도 다니고 넷플릭스(한 달 무료)도 열심히 봅니다.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 즐거워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입니다. 일기장에 끄적인 것 같은 글들도 많고 혼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것 같은 글도 있어서 재미있네요. 읽다 보면 계속 웃게 됩니다. 고추의 품종은 종류가 너무나 다양한데 그 이름도 대단하네요. 대권선언, 백전백승, 신화창조 등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중국에서 채종한 같은 씨를 두고 종묘회사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다른 값에 판다고 하니 농협 직원인 친구 찬스로 저렴하게 사는 것이 이득일 듯합니다. 저자가 할부로 산 차를 누가 박고 가서 마음이 아팠는데 블랙박스를 보고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영락없는 시골생활을 보여줍니다. 메모리에 담긴 영상을 보려면 리더기가 있어야 하는데 읍내에 하나뿐인 컴퓨터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리더기를 사서 확인해보니 범인은 알 수 있었지만 동네 사람을 경찰에 뺑소니로 신고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나온 식당에 가보니 식당 주인이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줍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개인 정보를 함부로 알려주다니 놀라게 되네요. 동네 사람들은 다 돕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시골이라 가능하겠죠. 알고 보니 부모님도 아는 사람이랍니다. 동네 사람이니까요. 만나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자 사고를 낸 줄 몰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가관입니다. "술에 취했었거든." 낮술을 한 거죠. 일 끝나고 막걸리 한 잔을 일상적으로 하는 농부의 삶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뺑소니를 당해서 화가 날 법도 한데 이런 내용도 유머스럽게 써나가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기장에 쓴 듯 짧은 글이 반복됩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글들이 두서없다고 느껴지지만 중간중간 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흐름을 이어가네요. 고추 농사, 옥수수 농사, 참깨 농사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며 생활하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평범할 것 같은 농사 이야기를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있네요. 저자는 농부로 사는 것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여러 가지 꽃이 핀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도심지와는 다른 여유를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네요. 농부만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고 운율감 있게 쓴 글들을 읽다 보면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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