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희의 뱀파이어 시학과 주디스 버틀러의 취약한 주체의 정치 윤리학은 서로 맞닿아 있다. 주체가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우월하고 분리된 위치를 버리고 자본주의 현실 속의 식인주체의 하나임을 인정할 때, 자기동일적 젠더 주체를 포기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불확실한 삶임을 반성할 때 주체와 타자의 소통과 대화의 가능성은 조금씩 열린다. 공감의 능력, 소통의 능력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에 대항하는데 필요한 삶의 감수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폭력은 더 많은 상실을 낳고, 그 결과 불확실한 삶의 요청을 배려하지 못한 정치적 분노만을 생산하게 된다. 윤리적 소명의 가능성은 타인과의 감정적 유대를 빨리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에 머물러 내 몸이 너무나 취약함을, 또 나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할 때, 그래서 삶의 불확실성, 존재의 불확실성을 인식할 때 시작된다. 탈-정체성(dis-identificaiton)이야말로 정체성의 일상적인 실천(common practice of identification)인 것이다. 타자의 얼굴이 나를 형성하고 나의 정체성은 타인에게 근본적으로 기대어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식인주체로 살아가는 우리 뱀파이어들이 서로를 물어뜯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불)가능한 방식이다.
생명의 윤리, 일상의 윤리~ 이 책은 페미니즘과 인류학이라는 관점에서 일상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밀도있게 조망한 책이다. 환경오염으로 점증하고 있는 불임 부부의 대리모 문제나 인공수정 문제, 아동들에게 일상화된 성장호르몬의 투약, 건강정기검진에서 여성들이 회피하는 자궁암과 유방암 검진의 문제 등 일상성 속에 흔하게 발견되는 생명공학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조망해간다. 자녀 낳기, 잘 키우기, 오래 살기라는 일상성부터 또한 황우석 박사 등의 유전공학연구에서 문제시되었던 난자거래 문제에 이르기까지 삶 바깥에서 소수 전문가의 것이 아닌, 삶 속에서 보통사람의 일상속에 스며들어있는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연구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