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까닭을 묻다 -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지음 / 두란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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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책을 받고 제일 먼저 나온 탄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예배가 있는 주일에 꼭 새벽기도를 해야 하나? 더욱이 주일은 거룩한(?) 날이니 꼭 담임목사가 설교해야 한단다. 그러니 주일은 적어도 내게는 죽일날이다. 그런데 하필 작년 한 해 주일 큐티 본문이 욥기였다. 그냥 주중 성경 본문을 이어서 하면 되지. 편집자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나 굳이 주일에 다른 본문을 할 필요가 있나. 이러니 주일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게지. 그래서 욥기는 내게 엽기였다.

그래도 해야 할 일. 어쩌겠나. 그런데 참고할만한 자료가 별로 없다. 평소 욥기 설교를 들어본 기억도 없다. 기껏해야 1-2장 그리고 40장 이후가 전부다. 그러니 욥기를 통독할 때 앞부분과 뒷부분만 읽고 나머지는 퉁 치고 싶은 유혹을 피할 수 없는 게다. 도대체 친구들의 반복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나?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설교자는 죽을 노릇이다. 그러던 중에 크리스토퍼 애쉬의 <욥기>(성서유니온)을 찾았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42장짜리 고통 치료의 과정을 주셨다.”고 썼다. 고통의 문제는 즉각적인 정답이 없기 때문에,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란다.

맞다. 고통의 문제는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 그러나 욥에게 42장은 고통 치료 과정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냥 고통이요 너무나도 긴 고통이었다. 그러니 <, 까닭을 묻다>가 조금 일찍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그 긴 고통의 시간을 조금은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서 아쉽다. 저자는 이 책이 학문적 주석이 아닌 개인의 묵상이고,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라 하지만 아니다. 다른 어떤 책과 주석보다 더 많은 통찰력을 준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설교자들이여 무조건 사라.

역시 책을 읽으면 두 번째로 나온 말이다. 내게 볼 때 저자는 고난 분야의 고수다. 고통에 잔뼈가 굴다. 저자의 말마따나 자신도 욥과 유사한 상황을 당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욥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 욥의 아내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의 아내가 빠듯한 살림을 아끼고 아끼면서 남편과 자녀들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모습에 비쳐 욥의 아내 또한 아이들 무덤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을 것이라는 문장에서는 탄성이 나온다.

하나님은 또 어떤가? 고난은 필시 하나님을 향한 항변을 포함한다. 자신에게 원인을 찾기보다는 덮어 놓고 하나님께 화살을 돌린다. 분명 벌인데 탓한다. 그러니 욥인들 오죽하랴. 그래서 악과 고통의 문제는 늘 어렵다. 이해할 듯하다가 또 막힌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거칠게 항의했다. 저자 또한 그런 욥에 빙의 되어 내적 고민을 발설한다. 그래서 시원하다.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니 속이 뚫린다.

설교자로서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명제적 확신을 갖고 외치는 설교가 교인들에게 일종의 폭력처럼 들리지 않을까하는 염려 말이다. 너무 한 측면만 보고 쉽게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아닐까 늘 조심한다. 그러니 고난은 얼마나 더 다층적인가.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그래서 답답해한다. 목사로서 뭔가 속 시원한 대답을 줘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허나 나도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하지만 이제 전해 줄 책이 생겼다. <, 까닭을 묻다>를 읽으라. 그러면 김기현 목사가 답해 줄 것이다. 그러니 성도들이여 무조건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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