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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1. 처음 책을 구매한 것은 이 책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큰 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야지 한 마디 할 수 있을 거라는 허영심도 구매의 동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책은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펼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2. 그렇게 화제가 되고 있던 때 소위 문화창작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이 책을 평가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어느 모임에서 같은 차에 동승하게 되었고 한창 화제가 되고 있던 터라 그 사람에게 누군가 채식주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이 책의 야만성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했다. 또한 서양인이 가지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기하고 있다고 한국 사회를 왜곡되게 그리고 있다고 한 것 같다. 정확한 워딩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야만”이라는 표현을 쓴 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어떤 저작활동, 연구활동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야만”이라는 가치편항적 표현을 사용한 것만으로 난 그 사람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채식주의자에 약간 동정적이 되었다.
3. 문득 그냥 생각나서 책을 뽑아 들게 되었다. 이 책에 당시 우연하게 들었던 그 교수의 인상이 드리워져 있었다. 맨부커상 수상보다 나에게는 더 강렬한 직접 체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은 그 사람이 잘못된 단어를 선택하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야만이라기 보다는 야생에 가깝다. 문명의 대립어인 야만보다는 오히려 원초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다. 야만이라니.... 이 책은 야만에 저항하는 지친 몸부림에 대한 글이다.
4. 형부와 처제라는 야동에서 상투적일 법한 관계가 소재로 등장했기 때문에 그 선정적 상상을 불쾌해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그런데 문득 그 모든 일상의 폭력과 야만이 잉태되는 곳이 가정이다. 우리가 따뜻하고 즐겁다고 세뇌하고 있는 그 문명의 상징. 오늘도 뉴스는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의 파편들을 보도하고 있다. 처제와 형부는 혈연으로 묶이지 않았으나 가족의 내밀한 비밀을 공유한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알 수 있는 공간은 가정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차마 알지 못한 비밀이 일상생활 안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처제에게 남아있는 몽고반점 이야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처럼.... “나무의 불꽃”에서 인혜는 어디서 잘못되었나를 되집어 본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에 동생에게 스무살까지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는 순간은 들어 있지 않다. 일상적으로 타인의 비밀이 공유되는 순간......혼인으로 맺어진 가정은 참 이상한 공간이다...생판 모르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내밀한 일을 가지고 수다를 떤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폭력적이다.
5. 그렇다. 이 소설의 폭력에 대한 강렬한 거부이다. 흔히 하는 농담처럼 “더 강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자”, 그래서 식물이 되고, 더 나아가 그냥 나무토막이 되어 버리고 싶은 존재의 이야기이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고, 상처 주고 싶지 않은 생명이 되고 싶은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몰이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사유를 야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사람은 책에서 무엇을 읽었던 것인지 오히려 궁금하다.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 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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