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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하소연 옮김 / 자화상 / 2020년 2월
평점 :
모비 딕 완역 버전은 실로 어마어마함. 그런거를 읽을 엄두는 여전히 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난 단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ㅎㅎ
그래서 모비 딕을 그래픽노블로만 본 상태였는데, 좀 더 짤막한 버전의 <모비 딕>을 만나 냉큼 읽어봄ㅋㅋ 이거는 두어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그래픽노블로 접하면서 지면과 지면 사이에 빠져있는 듯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는데 역시 텍스트로 읽으니 많이 해소가 되었음.
나는 이 책은… 고래와의 싸움은 둘째고..
애당초 에이해브 선장이 고래에 집착하게된 이유를 찾는게 키라는 생각이 듬. 다리를 잃은 것에 대한 복수라고 보는 것은 조금 좁은 해석이지 싶다.다리를 잃은 것은 집착의 결과에 불과한 것 같음.
이야기 속에서 모비 딕은 수많은 공격에서도 살아남은 불멸의 존재처럼 묘사된다. 에이해브는 불멸의 존재를 정복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하면서 자신을 ‘자연과 신의 질서에 도전하는 초월적인 존재’라 느낀게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는 복수의 결과보다도 복수라는 행위 자체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자 의미, 생존의 이유가 되었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로 이어지다 못해 끝내는 파쿼드 호 전체를 파멸로 밀어넣게 되었지만.
파쿼드 호에 탑승한 사람들은 다양했다. 다수는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 따위에 관심이 없었겠지. 하지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었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에이해브의 운명에 강제로 편입되고 말았다.
에이해브에게는 모비 딕에게 가한 최후의 일격이 숭고한 죽음이었을지도. 하지만 생계를 위해 승선했던 평범한 선원들의 죽음은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었다. 일명 개죽음. 그들이 사라진 후, 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피쿼드호의 잔해와 선원들의 비명까지 모두 삼켜버린게 그 증거일 터. 인간의 거대한 투쟁(혹은 발악)과 희생은 무심하고 거대한 자연이게 한낱 작은 소동에 불과한 것이다.
그 와중에 이즈마엘만이 기적적으로 생존하여 이 모든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비극의 증인이 되어서, 파멸의 순간에도 에이해브의 광기에 동조하지 않았던 평범한 인간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슈마엘이 구출된 장면은 아이러니 하지만, 대규모의 파멸 속에도 인간적인 연민과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유일한 위안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