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도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리더스원 큰글자도서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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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주인공 '토니', '나'의 시점에서 쓰여지는 이야기.

젊었을 때의 주인공이 사랑했던 베로니카라는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친구 '에이드리언'과 본인이 사랑했던 베로니카라는 여자가 사귄 것을 알게 되고나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친구에게도 모욕이 되는 말까지 포함해서 자신이 사랑했던 베로니카에게도 온갖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 위해 이메일로, 편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그들을 파멸시키겠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고취시킨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십년후 회고는 다르다.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기에, 마치 자신이 한 말의 결과인양 생겨난 아이를 보고 경악하고, 본인이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되뇌면서 자신은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자책하고 있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친구에게서 사랑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반응이 아니라, 너희 둘은 잘먹고 잘살아, 그러나 너희 둘의 아이는 저주받아 마땅해 와 같은 저주 형식의 이메일을 본인의 친구에게 받는다면 화가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러나 정작 에이드리언의 죽음이후 주인공 '나'의 반응은 어떤가? 본인의 말이 불러온 결과가 친구의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친구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훌륭한 친구였으니 죽는 방식도 훌륭했다고, 친구의 죽음을 미화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에 대한 물음은 나이가 들어 회고를 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십년이 지나 다시만났을 때 어느정도의 아무렇지 않음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가 회한을 뉘우침으로 바꿔 상대방에게 용서받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사랑했던 사람과 처음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의 독자에게도 세월의 흐름과 사람의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은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어느순간, 주인공처럼 진심이 아닌데도,모순적으로 어느순간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었던 나를 자각하고, 그말을 들은 상대방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책속의 '나'처럼 본인은 용서받지 못해야 마땅할 사람이란 걸 알아도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비참한지도.
자신의 깨달음 직전에도 주인공 '나'는 본인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은 잘못을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최소한의 사죄를 보내지만,
답장을 보낸 사람의 답변은 냉랭하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와도 같은 답변은 마치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잘못 대했던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인것만 같다. 독자는 그래서, 주인공 '나'의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 뭔데? 주인공이 저정도 사과를 했으면 됐잖아. 와 같이 생각하다가, 본인의 경험까지 결합해 경험 속에서 자신과 모른척 살아가기로 다짐한 사람에게 들었을 법한 이런 말에 대해 더욱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 '나'의 깨달음으로 끝난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사람과, 친구와, 친구와 애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축복받지 못한 죄 없는 생명에게까지 주인공이 무심코 그냥 했던 말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만들었는지를.결국 그는 친구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본인이 이메일로 베로니카의 어머니에게 물어봐. 라고 했던 말 때문에 벌어진 일을 주인공은 마지막에야 깨닫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말은 진심이 아니어도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소설의 결말을 이해했다면, 중간에서 암시가 가리키는 결과를 알았다면 모를까, 이제까지 깔려왔던 소설 속의 암시들에 대한 결과를 알고 소름이 돋을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회고랍시고 이런 철학을 가장한 성적인 한남자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가 싶었는데, 결말의 주인공의 기분을 상상하니 왜 영국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이 이소설에 주어졌는지 알것같다.

초반부만 읽고 별 것 없는 소설이야 라고 생각한 내 예감마저도 사람의 예감은 틀린다는 걸 증명하는 소설.

그렇지만, 슬프게도 소설의 결말은 후회라는 감정이 용서받을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

말도, 사람과의 관계도 함부로 해서 후회할 거리는 만들지 말자는 것,

그러나 얼마안되는 삶을 살아온 나도 알면서도 얼마나 숱한 관계를 소홀히 하고, 함부로 하고, 말도 함부로 했는가에 대해서 주인공처럼 용서받고 싶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란 걸 아는 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 반하여 살아온 주인공 '나'처럼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예감했던 내 생각을 짓밟고 후회로 살아간다는 건 비참하다.

한쪽은 용서받고 싶어도 다른 한쪽은 어쩌면 소설에서처럼 용서하지 않을 것이므로, 잠시나마 잊었다고 생각한 관계였을지 모를, 용서받지 못한 관계를 두고 시간속에서 더더욱 후회로 남은 관계를 주인공의 기억처럼 선명히 하고 되뇌게 만드는 건, 그러나 어쩌면 내가 왜곡하고 해석한 기억을 기억이랍시고 지니고 있는건, 내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신의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 잠시나마 잊었다고 생각한 관계였을지 모를, 용서받지 못한 후회로 남은 관계를 주인공의 기억처럼 선명히 하고 되뇌게 만드는 건, 그러나 어쩌면 내가 왜곡하고 해석한 기억을 기억이랍시고 지니고 있는건, 내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신의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 그렇다면 진실은 더욱 가혹하고, 현실도 소설보다 더 가혹할 것이고, 내가 말하는 뉘우침이라는 감정도 한낱 뉘우침이라는 포장에 싸여진 후회라는 감정으로만 치부될 것이고, 늙은 후에도 안고가야할 용서받지 못할 감정일 것이라는데,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도 만들어갈 인간관계에 있어서, 또는 남에게 하는 말들에 있어서 이전의 후회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내가 느낀점을 다른 이들도 깨닫도록 행해야 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

 

날 원망하지 말기를, 날 좋게 기억해주기를. 세상 사람들이 날 좋아했다고, 날 사랑했다고, 내가 나쁜놈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기를. 이중 해당되는 경우가 단 하나도 없다 한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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