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물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일전에 읽은 이노우에 아레노의 책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됐다. 어쩔 수 없는 물은 여섯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집으로, 여섯 이야기 속에 등장한 인물들과 주 무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1편에선 엑스트라였던 사람이 다음편에선 주인공이 되고 1편에서의 주인공이 이후엔 쭉 엑스트라가 되는 하는 식이다. 여기에 소설의 시점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보니 서로 얽힌 사건들이 각자에게 비춰지는 모습도 다르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달라서 아주 흥미진진하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받아 들였지? 하는 궁금증이 다음 편 이야기에서 확 풀린다. 마치 제 각각의 비밀을 풀어내어 이야기라는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같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야기 자체가 재밌는 것과 별개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비호감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럴듯한 허우대로 여자들에게 빌붙어 사는 양아치(편지와 쿨피스), 주말마다 인터넷에서 꼬신 남자를 눈앞에서 바람맞추는게 취미인 유부녀(올리비아와 빨간 꽃), 명예퇴직 후 피트니스 클럽 접수원 아가씨와 바람이 난 유부남(운동화와 처녀소설), 편지와 쿨피스의 주인공인 양아치를 짝사랑 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여성(사모바르의 장미와 어니언그라탱), 운동화와 처녀소설의 주인공인 중년남성과 불륜을 하고 클럽을 전전하는 피트니스 클럽 접수원 아가씨(클랩턴과 납골 단지), 사라져버린 아내를 기다리는 수영강사(플라멩코와 다른 이름). 이중에서 유일하게 비호감스러운 인물은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소문의 주인공인 수영강사 뿐이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들을 이렇게 비호감으로 느끼게 된 것은 이들의 내면을 전부 흝어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각 이야기 속 화자의 시선으로 다른 이야기 속 주인공을 볼때는 그들이 비호감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타인의 시선으로 관찰되는 배경일뿐이다. 즉 내가 각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호감이라고 느끼는 대상은 바로 내가 지금 읽는 이야기의 화자인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때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내면의 이야기가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화자에 대한 비호감도가 우주 저 멀리까지 솟구쳐버린다. 아마 우리 자신의 모습도 이 이야기 속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잔잔한 수면 위에 평온하게 드러나 있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 속에선 미친듯이 물장구를 치며 어떻게든 수면 위로 말끔한 얼굴을 내놓기 위해 하루하루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제 우리의 겉모습은 이 책의 말끔한 장정과 편집처럼 sns에 이쁘게 업로드 된 사진으로만 보여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책 속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수영강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가 타인을 기다릴 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온 동네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어 입에 오르내리는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면서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험담에도 게의치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대단한 성인군자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가 그런 류의 인격인이였다면 아내가 그렇게 사라지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였고, 그것만으로도 해피엔딩을 맞을 충분한 자격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 책속에서 유일하게 내면과 겉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였으니까. 우리는 수영강사처럼 살라고, 그게 사람으로써 가져야할 기본소양이라고 끊임없이 배우는데 그러기 참 쉽지 않다는걸 새삼 또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수영강사처럼 해피엔딩을 맞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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