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
그레첸 루빈 지음, 윤동구 옮김 / 고즈윈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처칠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사주신 위인전집 덕분이였다. 삽화와 사진이 중간중간에 나오는 40권짜리 전집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칠편은 특히 삽화가 꽤 마음에 들어 종종 읽곤했다. 하지만 당시엔 군인을 거쳐 정치가가 된 사람이 왜 이렇게 위인전집에 나올만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고, 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처칠편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만 몇번씩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책의 뒷부분에 무슨 이야기가 써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처칠의 진면목은 그 정치계 입문 이후에 있었기에 어린날의 나는 알짜만 쏙 빼놓고 읽은 셈이였다. 그래도 그때 처칠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완성 되었으니 그다지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만일 그 어린날의 기억조차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테고, 그랬다면 내가 모르던 처칠에 대한 부분을 보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처칠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제법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처칠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과 부정적인 관점을 모두 게재하며 처칠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자 노력했다. 덕분에 처칠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을 동시에 이해하고 처칠에 대한 내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 갈 수 있었다. 물론 작가자신이 처칠광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객관성을 잃고 처칠의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할때도 있었지만, 그런부분들은 작가의 팬심으로 보고 넘어갔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사진자료들도 좋았고, 한 인물에 대한 전기가 어떤식으로 강조되고 왜곡되는지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이 책 덕분에 처칠을 위대한 위인이라는 존재에서 나와 같은 한 사람이라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알던 처칠은 어린시절의 철부지 처칠과, 나이가 들어 영국 수상자리에 올랐던 처칠 이 두가지의 모습뿐이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사이사이에 있는 처칠을 알게 되면서 꽤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읽었던 위인전기에서는 어느 부분에서도 처칠이 거만하고 독선적이며 명예욕과 야망에 가득차있었으며 인종차별주의자에 사치했던 사람이라고 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위인전기에서 어떤 바보같은 사람들이 그런 내용을 다루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그 간극이 너무 컸다. 내가 기억하는 처칠은 자신의 팔뚝살을 부하의 치료를 위해 떼어줄만큼 용감하고 착한 사람이었으니까.(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그 위인전기 작가의 창작같다.) 게다가 처칠이 그렇게 성격이 괴팍했다는 건 그의 어린시절에 한정된 것일 줄 알았는데! 새삼 세살버른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버릴데 하나 없는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단점은 소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에 최소한 "거만함"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 처칠이 정말 성격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마치 담임선생님들이 되도록 생활기록부에 긍정적인 말을 써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웬만하다면 그의 공을 부각시키고 과는 덮어주려는 것이 전기의 미덕일텐데 오죽하면 긍정적인 전기에서도 부정적인 전기에서도 그런 말들이 계속 따라 붙겠는가. 그런데 그런 거만함에서 나오는 독선과 괴팍함 덕분에 그 자신과 영국의 난국을 타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히틀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독선적이고 괴악한 성격의 사람이 딱 맞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를 통해 상대방의 수를 생각한다랄까? 이렇게 히틀러나 처칠이나 둘다 가까이 가고 싶은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볼 때 위인과 악인은 백지 한 장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인도사람들에게는 히틀러나 인도독립을 끝까지 반대한 처칠이나 똑같을테니,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 조차 안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평범한 한 사람으로써의 처칠은 내가 싫어하는 요소는 다 갖추고 있었지만, 정치인으로써 그는 유능했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이였다. 자신의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조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넢죽 엎드릴 릴 줄 알았고,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의지가 있었다. 그의 귀족 혈통에서부터 비롯된 자존심과 거만함을 생각해볼 때 이런 그의 태도는 꽤 대단하다고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나라의 현실을 봐도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힘있는 자에게는 엎드릴 정치인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안위를 내던질 정치인들은 많지 않지 않은가. 비록 야심에 가득차 있었고, 명예욕에 목말라 있던 처칠이지만 그런 것들을 이렇게 모두 자신의 조국을 위해 쓸 줄 알았던 모습은 그가 어째서 위인전에 오를만한 인물이였는지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처칠같은 존경받을만한 정치가가 한명 나타났으면 좋겠다. 처칠같이 성격이 괴팍하면 좀 곤란할 것 같지만. 

"가장 운 좋은 세대는 동질성을 갖는 세대로서, 한 시대라는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세대다. 반대로 불운한 세대는 두 시대에 걸쳐 있는 세대다" 리턴 스테리이치의 말이다. 이 문장 이상으로 처칠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영광과 그 추억에 대한 믿음을 원동력으로 힘을 얻었지만, 미래를 외면했기에 실각했던 처칠. 그가 한세대에만 머물렀다면 그는 전쟁영웅으로만 기억될수도 있었고, 혹은 실패한 정치가로만 머물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세대를 살았기에 그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를 잊는 시대의 상징이 된 느낌이다. 그래서 탐탁치 않게 느껴지는 그의 인간적인 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가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면 그 당시의 처칠이 처한 환경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처칠의 시니컬한 농담과 재치들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상으로 유쾌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던 그의 저서들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작가로써의 그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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