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 10년 차 서점인의 일상 균형 에세이
김성광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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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서점인의 일상 균형 에세이

모든 책은 다른 책을 통해 확장되고 깊어지고 반박될 수 있다 한 권의 책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다음 책으로 맞춤하게 이어질 때 독서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선사한다
나의 경우, <표백>이나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서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불신을 표하다가도, <오베라는 남자>나 <딸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허우적대고 있는 앞 세대의 마음도 어림해보게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다가 특히 사찰 부분에 꽂혔는데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시리즈를 만나서 더 만족스런 정취를 누릴 수 있었다 <사람, 장소, 환대>를 읽고 공동체가 구성원을 환대하고 환대하지 않는 문제에 관심이 생긴 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낙인찍힌 몸>을 통해 둘러싼 편견과 차별에 관한 문제로 시야를 넓혀볼 수 있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을 때는 '내려놓을 줄 아는 삶'에 깊이 공감했다가도 <골든아워>를 읽을 땐 그럼에도 누군가는 '인생을 바쳐 무언가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한 권의 책도 만족스럽지만, 책이 책으로 연결될 때 나는 생각이 조금 더 두터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자들에게 책을 잘 소개하고, 책과 책을 연결하는 일을 잘하려면 많은 책을 알아야 한다 많은 책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많은 책을 읽어야 했다

P30 나는 꽤 강경한 칼퇴주의자다 내 인생은 일 바깥에도 있기 때문이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일 바깥의 삶이 허술해진다 회사 일에 지나치게 책임을 느끼면 회사 바깥의 일에 무책임해진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해보면 이건 자연법칙이다

일 바깥의 삶을 구하기 위해 삶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만, 나는 일에서도 희열을 느끼고 싶고 내가 하는 일을 더 의미 있게 잘하고 싶다 그런데 일에 몰입하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칼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원하는 만큼 일에 매진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하루 중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만 그 시간만으로 내 일에 보람을 느끼긴 쉽지 않다

나를 매혹하는 것이 나의 일이 될 때, 일은 삶의 각별한 일부가 된다

P150 그러니까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여부로 판가름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맑은 하늘을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을 가족 안에서 다 얻을 순 없다 가족 바깥의 많은 사람들과 협력함으로써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대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달성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체득케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 아닐까 가족의 구성원임을 감각할 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임을 자각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시야는 아이나 내 가족에만 고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P165 관계가 괜찮으면 다 괜찮다 육아는 긴 과정이니까. 혹 잘못된 길로 들어갔더라도 관계만 괜찮다면 우리는 손잡고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

직장인으로서 내 일을 생각하고, 연인으로서 아내를 생각하고, 부모로서 아이를 생각하고, 시민으로서 세상을 생각하는 일은 결코 대단하지 않다 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일상이 되어야 할 일이다 잠을 포기하고 밥을 혼자 급하게 먹으며 추구할 일은 아닌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의 일상은 이미 꽉 짜여 있어서 이 당연한 일을 하려면 시간을 짜내야 했다 세사에 '당연한 일'은 있었지만 '당연한 일을 할 시간'은 없었다 회사가 할당하는 업무와 아이와 생활이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한 계절이 흘렀다

대단한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는 것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생각만으로 삶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없이는 깊어질 수 없으므로. 가족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세상과 동료 시민에 대해서 나는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 이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기도 하다 더디더라도 멈춤 없이 노력을 기울여가겠다

대형 온라인 서점 MD로 10년, 시간은 없지만 잘하고 싶은 일은 많은 직장인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바쁘게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매출을 높이기 위한 노력, 주목받지 못한 도서에 대한 안타까움, 책을 읽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늦은 점심 혼밥하고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버스 대신 갈아타야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의 노력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서점을 다니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데 그 틈틈히 <채널예스>에 연재를 하고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나는 책 속의 책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책 속에 책 이야기가 많아서 더 좋았다 한 권의 책으로도 만족하지만 책이 책으로 연결될 때 생각이 조금 더 두터워진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육아에 너무 지쳐있다면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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