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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달인 1
카리야 테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4월
평점 :
만화방에 가도, 서점에 가도, 만화책이 있는 곳 어디라도 요즘은 요리 만화의 범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요리책도 엄청나게 늘어났고, 요리법이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들도 부지기수다. 생활수준이 조금 올라가면서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리만족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로서는 더 크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미식을 하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치, 농축수산물의 유통현황, 무엇보다도 음식에 대한 전반적 인식... 게다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식을 하기에 한국 음식은 너무 간이 강하고, 우리는 거기에 너무 익숙하다.)
그 중에서도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는 독보적인 존재다. 솔직히, 그림이 주는 느낌으로는 ... '안 예쁘다'라는 게 사실이지만, 그리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예쁘지만 재미없는 만화가 대부분이니까.
일단 <맛의 달인>은 대부분 요리만화들이 보이는 단순한 기존 틀을 과감하게 부수었다는 점이 일단 돋보인다. <맛의 달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나름대로의 욕망과 진실, 그리고 거짓을 보인다. 나름의 인간적 면모라 하겠다. 사실,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현명하며, 주변인물로 내려갈수록 절대악과 무지몽매함에 가까와지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둘째로, 나름의 인간적 면모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그리 복잡하게 얽혀있지 않다. 그저 요리, 혹은 '맛' 그 자체를 중심에 두고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된다. 단순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진실된 모습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요리사가 매일같이 뼈를 깎는 대결만 하면서 살겠는가?
셋째로,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렇게 소소하게 벌어지는 사건들 뒤에 이 만화의 주 내용이 다시 흐르고 있다. 주인공들의 관계는 사건에 사건을 거듭하면서 계속 발전해가고,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된다.
즉, <맛의 달인>이 좋은 근거는 단지 요리만화로서가 아니라, 그 요리들을 통틀어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대부분의 요리만화들처럼 대결구도도 등장한다. 하지만, 무슨수가 있어도 승리로 만들어야 하는 다른 만화들과는 달리, 합리적인 근거만 있다면 그 결과가 패배로 끝나기도 하고, 무승부가 되기도 한다.
내가 <맛의 달인>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 상당히 고민을 많이하고 내용을 만드는 작가들 때문이다. 내용에 맞추어 엉성하게 한 두 가지 요리로 질질 끌고가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다소 내 구미에 맞지 않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일본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정치적, 문화적 우려에 대한 이야기들... 특히 미국이 가하고 있는 정치적 압력에 대한 암묵적인, 혹은 공공연한 시위성 발언들...
만일 요리에 관한 만화를 보고 싶다면, 혹은 문화나 환경, 특히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물론 공부가 부족한 면도 눈에 띈다. 한국편에서의 옷차림 등, 우리 눈에 틀린 부분들이 있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