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무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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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의 감동을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판권은 돈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비천무>를 사지는 못한다.

그게 1989년 아니면 1990년 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때가. 그 때 받았던 감동과 아픔, 그리고 기쁨 모두를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밤을 새우며 읽었고, 당시 13권이었던 이 책이 주는 느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화라... 이 책으로 영화를 만든다기에 한참을 고민했다. 영화를 보러 갈 것인가, 이 책을 다시 볼 것인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보여주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6권으로 된 이 책의 신판을 구입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과는 또다른 감동으로 또 하룻밤을 지샜다. 처음의 느낌이 거대한 파도를 처음 접한 놀라움이었다면, 나이가 더 든 지금의 느낌은 가슴을 온통 적시며 흐르는 거대한 강물 앞에 선 기분이랄까? 놀라움은 없지만 감동이 있고, 거대함은 없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은은함이 있다.

물론 겨우 6권에 다루기에는 벅찰 정도의 스케일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나,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얽힌 애증관계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처음으로 읽는 사람에게는 거대한 감동을 분명 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영화를 보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것 같다.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는 영화란 없으니까. 차라리 전혀 다르게 각색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기본 틀을 그대로 땄다고 하니까 볼 생각이 싹 사라졌다.

한 마디 더. 돈이 얼마나 들었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 같은 사람은 평생 만져보기도 힘든 액수였다. 차라리 괜찮은 창작 시나리오를 한 편 사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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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1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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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꿈꾸어 본 적이 있는가? 지나가버린 시절, 이제는 잊은지 오래라고 생각하는, 아니 한 때 꿈이 있었음을 떠올리지도 못하는 그대, 곰곰히 생각해보라. 꿈꾸어본 적이 있는가?

한때는 어떠했다고,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현실이란 이러하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진정 꿈꾸는 자는 현실에서도 그 꿈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지금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라. 어쩌면 그대의 꿈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하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를 꿈꾸게 하는 자는, 어쩌면 그 존재 자체가 그대의 환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꿈이다.

이 만화... 처용설화를 이용했고, 다소 안타깝게 사랑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삶에 대한 집착과 애증이 드러나고, 초연과 달관이 그려졌다해서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에 서려 있는 꿈이다.

한 때나마 진정한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읽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 꿈의 기억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한 때 나를 행복하게 했던 그 꿈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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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달인 1
카리야 테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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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에 가도, 서점에 가도, 만화책이 있는 곳 어디라도 요즘은 요리 만화의 범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요리책도 엄청나게 늘어났고, 요리법이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들도 부지기수다. 생활수준이 조금 올라가면서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리만족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로서는 더 크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미식을 하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치, 농축수산물의 유통현황, 무엇보다도 음식에 대한 전반적 인식... 게다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식을 하기에 한국 음식은 너무 간이 강하고, 우리는 거기에 너무 익숙하다.)

그 중에서도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는 독보적인 존재다. 솔직히, 그림이 주는 느낌으로는 ... '안 예쁘다'라는 게 사실이지만, 그리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예쁘지만 재미없는 만화가 대부분이니까.

일단 <맛의 달인>은 대부분 요리만화들이 보이는 단순한 기존 틀을 과감하게 부수었다는 점이 일단 돋보인다. <맛의 달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나름대로의 욕망과 진실, 그리고 거짓을 보인다. 나름의 인간적 면모라 하겠다. 사실,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현명하며, 주변인물로 내려갈수록 절대악과 무지몽매함에 가까와지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둘째로, 나름의 인간적 면모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그리 복잡하게 얽혀있지 않다. 그저 요리, 혹은 '맛' 그 자체를 중심에 두고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된다. 단순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진실된 모습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요리사가 매일같이 뼈를 깎는 대결만 하면서 살겠는가?

셋째로,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렇게 소소하게 벌어지는 사건들 뒤에 이 만화의 주 내용이 다시 흐르고 있다. 주인공들의 관계는 사건에 사건을 거듭하면서 계속 발전해가고,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된다.

즉, <맛의 달인>이 좋은 근거는 단지 요리만화로서가 아니라, 그 요리들을 통틀어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대부분의 요리만화들처럼 대결구도도 등장한다. 하지만, 무슨수가 있어도 승리로 만들어야 하는 다른 만화들과는 달리, 합리적인 근거만 있다면 그 결과가 패배로 끝나기도 하고, 무승부가 되기도 한다.

내가 <맛의 달인>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 상당히 고민을 많이하고 내용을 만드는 작가들 때문이다. 내용에 맞추어 엉성하게 한 두 가지 요리로 질질 끌고가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다소 내 구미에 맞지 않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일본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정치적, 문화적 우려에 대한 이야기들... 특히 미국이 가하고 있는 정치적 압력에 대한 암묵적인, 혹은 공공연한 시위성 발언들...

만일 요리에 관한 만화를 보고 싶다면, 혹은 문화나 환경, 특히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물론 공부가 부족한 면도 눈에 띈다. 한국편에서의 옷차림 등, 우리 눈에 틀린 부분들이 있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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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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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불만을 품고 살아간다. 불만을 품은 자들은 누구라도 그 불만을 말할 수 있다.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책을 통해 에코가 하는 이야기에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고, 이따금 히죽거리거나, 낄낄 웃으면서 읽는 내 모습을 말이다. 난 이 책을 통해 남미를 오해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난 이 책을 통해 미국을 더 싫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근거가 조금 희박하다. 그저 이 책에 그렇게 제시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아닌 누군가가 그런 맹목적인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를 '바보'라 부른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고? 이렇게 간단하게 자기 독자들을 바보로 만들다니... 이 책의 작가가 유능하긴 유능한 모양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아무 것도 기억에 남질 않는다. 인터넷에 떠 있는 유머게시판을 읽고 난 때처럼, 머릿속은 텅 비어 있다. 책 한 권을 통틀어 엄청난 양의 불만과, 그 불만을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웃음, 그리고 희화화된 외국의 풍물은 있으되 그 불만을 시정할 대안이, 웃음 뒤의 깨달음이, 희화화된 대상에 대한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머릿속을 맴도는 불만을, 속칭 '배설'해내는 것은 아무라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처럼 깔끔하게, 그리고 우습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불만을 쏟아붓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문제는 창조하고, 진실을 밝히고, 모험을 감행해내는 학자로서의 역할이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도록, 난 이 책을 에코가 썼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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