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의 품격 -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모를 위한 멘토링
이건숙 지음 / 두란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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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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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사랑한 여인
마리 에머리 지음 / 흰물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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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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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2015-09-0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메이슨이란 단체의 내막을 파헤친 책이다. 이들은 회원들에게 의식을 통해 신접하는 체험을 하게 한다. 귀신 들린 자들은 세상에 온갖 악행들을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게 된다. 살인, 착취, 그리고 온갖 불법적인 활동들. 무서운 단체다.
 

 

유석근 목사님은 확실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 같다. 우리 고대사의 엄청난 비밀을 성경과 연결하여 완벽하게 재현하는 그 능력이야 말로 단순히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게 훌륭한 역사 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모르니 어찌 고대사의 깊이를 이해할 수가 있었겠는가? 언(言)이라는 글자는 왜 말언이라 하지 않고 말씀언이라고 하는가? 말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능력이다. 원숭이가 진화해서 말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진화론이 마치 진리인 양 믿고 있는 인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다. 인간의 말은 하늘에서 받은 말씀에서 시작되었기에 말씀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말(語)도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언이다. 

불교도들과 유학자들이 버린 우리의 고대사를 선교도들은 생을 걸고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 고구려의 조의선인이 사라진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신라, 고려, 조선, 일제까지 합세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지워버리려고 힘을 썼으니 고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만 하여도 기적에 가깝다. 이제는 우리가 살려야 할 고대사의 진실을 자존심을 걸고 찾아내자. 한민족으로서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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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으로 배우는 한국사 - 논술에 강해지는
김태훈 지음 / 미래지식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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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제목이 토론을 말하기에 호기심으로 샀다. 그런데 토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방적 주입식이다. 제목이 부끄럽다. 토론이라면 당당하게 반대 의견이 나와서 고민할 거리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민할 거리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학계의 일방적인 다수 의견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제발 이런 엉터리 제목은 쓰지 마시라. 나도 현직 교사이지만 교사의 인식 수준이 부끄럽다.

 물론 이런 책이 나온 것을 김선생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 잘못은 역사학자들에게 있다. 그리고 토론과는 관계가 없는 글에 토론이라는 제목을 갖다붙인 출판사의 잘못(상업적 이기주의)도 크다.

 저자는 인류의 기원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라고 했다. 이건 완전히 환타지를 넘어서는 초환타지 소설이다. 결국 원숭이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주장인데,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원숭이들과 결혼해서 새끼치고 살면 새로운 인종의 탄생도 가능하다고 주장해야 합리적이다. 조상이 같은데 피가 안 통할 리가 없고, 새끼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뭐 너무 오래 전에 갈라져서 지금은 결혼이 어렵게 되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엉터리가 어디에 있나? 그렇다면 지금의 인류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결혼할 수 없어지는 때가 오겠네?

 직립보행이 두뇌용량을 크게 만들었다고? 그러면 돌고래는 한 번도 직립보행을 한 적도 없고 손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큰 덩치를 가진 고래보다도 두뇌기능이 우수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손이 자유로워 도구를 만들어 썼다고? 그러면 그 많은 원숭이 무리들도 손이 자유롭던데 왜 고도의 문명을 만들지 못했는가? 판다가 곰과 닮았다고 곰이 진화하여 판다가 되었다면 인정할 수가 있겠는가? 원숭이의 모습이 인간과 비슷하다고 하여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한다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진화가 있다면 퇴화도 있을텐데. 그러면 인간이 퇴화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여기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진화를 말하는 역사학자들은 사기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쉽고도 간결한 대화식의 서술이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 정도로 독자의 불만을 잠재울 수는 없다. 제목을 충족시키는 제대로 된 토론글을 하루바삐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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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노예가 많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운명의 노예가 된 이후, 끝없는 노예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적어도 법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노예가 아니다. 원래 노예를 뜻하던 글자인 民이 주인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직도 삶의 곳곳에 노예 상태로 머물러 있는 부분이 많다. 금융기관에 대출을 한 사람은 빚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점수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사상의 노예, 종교의 노예, 심지어 자유의 노예도 있다.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자유가 없는 인간들은 자유의 노예다. 힘써 부르짖는다고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삶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에 완전한 인간의 이론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럴수록 다양한 주장이 수용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양성은 창의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 다양성이 죽은 사회는 북한처럼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입시 제도는 다양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창의성을 죽이는 길이기도 하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문제와 똑같은 답을 원하는 사회가 창조적일 리가 없다. 한국의 초중등학교는 대학입시의 노예라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을 느겼다. 창의성 없는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고, 창의성 없는 서울대가 한국의 입시지도를 조정하고 있다. 우선 급한대로 서울대의 학부를 없애자. 대학원만 남기자. 로스쿨은 저자의 주장과는 반대의 결론으로 가고 말았다. 교육관료들은 현장을 모르고 날뛰고 있다. 교육개혁은 교육관료의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개혁이 이야기 되어야 한다. 정작 필요한 현장은 잠자코 있고 바깥에서 더 야단이다. 이것도 주객의 뒤바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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