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저스티스 - 불의의 시대에 필요한 정의의 계보학
김만권 지음 / 여문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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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와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전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쳤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그 힘이 대단했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많은 관심을 끌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까지 많은 이들이 저자의 주장에 호응하였던 것일까?

쉽게 보자면 대한민국 전체에 불었던 인문학에 대한 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는 그만큼 전방위적으로 대한민국이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대변해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부의 편중과 권력과 갑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정의공적 현실에서 마주하는 정의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대개의 경우 이런 절망 상황을 지닌 권력이 도덕을 외면할 때 생겨난다. 권력이 내세우는 의 파괴력은 단지 도덕에 등 돌리는 데 있지 않다. 권력은 많은 경우 권력이 발휘하는 정의로 포장한다.” - P. 10~11.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차별과 혐오가 싹트는 자리는 언제나 불평등이 만연한 곳이다. 민주사회에서 불평등이 만연할 수 있는 이유는 제도가 그 불평등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허용하기 때문이다. 제도적 불평등이 만연한 곳에서는 정의 역시 강한 자의 편에 서게 된다. 정의가 강자의 편일 때 차별, 자기모멸, 타자 혐오는 일상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일상이 가학적 유희로 번져나가고 있다.... 인간이 욕망을 느끼는 존재인 한 평등 그 자체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만든다는 사실이다.” - P. 354.

 

<호모저스티스 불의의 시대에 필요한 정의의 계보학>은 힘과 권력, 돈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해 도대체 정의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단순히 그냥 생각만 해보는 것이 아닌 계보학이라는 비판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정의에 대한 역사와 개념,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관점과 실행해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힘과 도덕의 균형으로 정의를 이야기한다. , 우리가 믿는 정의와 실제 현실에서의 정의의 차이가 바로 힘과 도덕중 어디에 더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 정의에 대한 이해와 접근, 실행방법이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힘과 도덕이 현대에 와서는 성장과 분배의 개념으로 확대 또는 변화되었으며, 힘을 강조하는 이는 성장을, 도덕을 이야기하는 이는 분배를 말한다고 한다.

 

우리가 공적 현실에서 마주하는 정의의 실체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정의를 힘과 도덕의 역학관계에 있는 것’, 즉 힘과 도덕의 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정의의 실체가 무엇이든, 그것은 힘과 도덕이 서로 대결을 벌이며 형성되어온 유동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P. 15.

 

정의에서 공정함이라는 도덕적 요소가 작동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관계 당사자들 간의 평등이다. 도덕이 정의의 요소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평등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류가 문명을 이룬 이후 인류의 역사는 불평등한 구조에서 벗어나 평등한 구조를 형성하려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 P. 56.

 

정의의 핵심은 개인의 권리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기본적 자유, 인생의 전망을 실현할 기회, 사회경제적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 P. 349.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정의는 결코 이념논쟁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본다.

그 어떤 주제도 종북 또는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논리를 이기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전체가 몇 명의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항으로 종북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에 정의는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이 우선되는 정의는 없다고 본다. 다만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는 가진만큼 누릴 수 있고, 더 가질 수 있다는 힘과 권력에 의한 정의는 분명 있다.

이성적으로 보기에는 불평등하고, 불의하지만 힘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 자손들이 대대로 마음껏 누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포장된 정의.

이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국민의 뭉쳐진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뭉쳐지기 위해서는 국민들 스스로가 더욱 깨어져야만 할 것이다.

권력자와 가진 자들을 욕하기 전에 스스로 그들은 선택했음을 처절하게 깨달아야만 할 것이고, 그들은 선택한 자신의 머리와 손가락을 욕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다시는 그런 자들을 선택하지 않으려는, 그래서 보다 평등한 정의를 누릴 수 있도록 올바른 이들을 선택하고자 하는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정의로운 제도가 정의로운 인간을 만든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제도적 장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차별과 혐오를 형성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데 있다. 평등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만드는 것이다. “평등을 만드는 일을 사회기본구조가 행하게 하라.” 이것이 차별과 혐오에 맞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정의의 자세다.“ -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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