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과 도마복음예수
청가인 지음 / 도꼬마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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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상과 도마복음 둘 다 낯설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 일제 강점기 시인이자 소설가라고 배웠고, 건축 일도 하였다고 한다.

그의 시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록되었으며, 당시에 유행하던 일체의 전통과 기성가치를 부정, 파괴하고자 한 다다이즘과 기성윤리와 현실의 일반적 개념을 거부한 주관적 내면세계를 심리적으로 분석한 초현실주의를 시도한 것으로 배웠다. 역시나 설명하는 것조차도 어렵다.

게다가 그의 시를 더욱 어렵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복음서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명인 도마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록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 복음서는 예수의 행적보다는 가르침만을 담고 있는 어록 복음서이며, 정통 성경의 공관복음서와 내용이 유사한 어록들이 많다. 다만 도마복음은 공관복음서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이 아닌 자아수행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한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이상과 도마복음에 대한 내용이다.

 

이 복음서는 바이블에 실린 다른 공관복음서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현명한 독자라면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 차이점 중의 중요한 것 하나를 말하면, 인간이 천국에 이르는 경로에 중간자의 역할이 철저하게 배재되었다는 점이다. 신과 개인을 연결함에 있어서 사제들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마치 불경이나 선문답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 P. 104~105.

 

<이상과 도마복음예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마복음 해설서>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2,000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를 가진 이상과 도마를 자아수행이라는 용어로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저자가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듯이 지금의 정통 기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거의 적그리스도로 불릴 정도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시인 이상의 생애를 짧지만 기독교적인 믿음의 구원을 거부하고 자아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 신과 같은 자아합일로 나아간 삶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이상의 자아수행의 방식을 도마복음에서의 예수의 말과 삶에 연결시켜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복음서을 취사선택, 조작하여 구원권을 팔았던 중세시대보다 오직 믿음이라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구원을 팔아서 자기 잇속을 챙기고 있는 현대의 자칭 정통기독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한다.

어차피 저자나 정통기독교를 믿는 이들이나 누가 옳고 그르고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믿는 바를 진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이나 도마복음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내용의 옳고 그름을 평할 입장은 못된다. 다만 이런 내용이 있구나 하는 정도의 이해를 할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그는 주어진 시간을 십이분 활용하여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여 신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도 비할 바 없이 귀중한 천부의 기회를 기독교라는 보이스피싱 업체가 감언이설을 동원하여 순진한 사람들을 유혹하여 통째로, 홀라당 뺏어버린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 P. 48.

 

도마복음과 바이블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믿음에 관한 것으로 생각한다. 읽어 보아서 알겠지만, 이 도마복음에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 믿음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곧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다는 것이며, 믿음을 강조하는 곳에 믿음이 없는 것이 진실 아니겠는가!” - P. 219.

 

읽는 사람은 누구나 도마복음예수와 바이블예수의 황당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무뚝뚝한 도마복음예수의 말이 복잡하고 친절해진 바이블예수의 말로 바뀌어 있다. 사기의 본질은 복잡성과 친절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친절하게 조작한 바이블로 바이블예수가 세상에 온 까닭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이스피싱을 한다면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드물지 않겠는가?” - P. 295.

 

정통 기독교교단의 교회에서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던 한사람으로 저자의 주장이 그리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미 현재 한국의 기독교의 행태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자칭타칭 지도자라는 이들의 막가는 행태는 뭐라 할 말을 잃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구원이 믿음에서 오든지 자아수행에서 오든지 아니면 실행에서 오든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지, 부활했던지, 성경에 오류가 있던지, 천국이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2,000천년 전의 진실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창조된 인간이든 진화된 인간이든 상관없이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인류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회를 이루어 무리지어 살게끔 창조되거나 진화되었다면, 인류는 서로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믿음이나 자아수행은 곧 무너질 것 같은 주춧돌없는 건물과 같지 않을까 싶다.

지금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너 죽고 나 살자는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처럼.

 

이것은 그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삶의 의미가 자아수행에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그 자아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두뇌-사고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도마복음예수의 너희가 살아있는 동안에 살아있는 자를 찾으라는 복음과도 정확하게 부합되는 것이다.” -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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