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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도 궁금한 바둑 이야기
이홍렬 지음 / 더메이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바둑의 역사는 수천년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중국 요임금이 만들었다고는 전제 하에서.
바둑은 한, 중, 일 삼국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즐겨하고, 가장 많은 대회가 열리고 있다.
바둑의 명칭 또한 삼국이 다 다르게 부르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일본의 명칭인 ‘고’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알파고의 ‘고’도 바로 일본식 바둑의 명칭을 붙인 것이다.
현대식 바둑은 일본에서 틀을 잡았고 오랜 시간 일본이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기사들이 세계 타이틀을 많이 가져왔고, 현재는 중국의 기사들이 최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바둑은 그러나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데 그치는 게임이 아니다. 무궁한 변화 속에서 기예를 떨치고 겨루는 예술이기도 하다. 프로기사는 그래서 승부사로서의 평가와 예인으로서의 평가를 동시에 받곤 한다.” - P. 106.
얼마전 방송한 ‘응답하라 1988’에서 인기를 끈 바둑기사 ‘최택’이라는 역할과 때마침 이루어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전은 우리나라에 바둑의 바람을 불어오게
했다.
물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재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과 학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 바둑이라고 한다.
그 열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집중력이 높아지고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보다 많은
학생들이 배우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엔 승부를 겨루는 종목들이 숱하게 많으며 바둑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바둑이 다른 승부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도로 인정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은둔적 특성 때문이다. 바둑은 여간해선 승부 결과에 표피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말만 들어선, 또는 얼굴 표정만 봐선 누가 이겼는지조차 아리송하다. 이런 종목은 바둑뿐이다.” - P. 65.
<알파고도 궁금한 바둑이야기>는 관전기자만으로도 20년을 보낸 저자가 한국기원발행 <월간 바둑> 연재 칼럼 ‘경운만필’과 바둑 TV 사이트의 <흑백광장>에 주로 게재됐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현대 바둑의 역사와 한중일 바둑 최고수들의 바둑과 삶, 그리고 바둑에 대한 여러 가지 저자의 생각들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바둑을 우리의 삶에 비유하곤 한다. 모든 이들의 삶이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한 삶은 거의 없고, 좋았다 나빴다가 반복되는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바둑의 흐름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하는 말일
것이다.
“바둑의 초, 중, 종반은 기승전결의 문법을 따르지는 않는다. 교향곡 작법을 연상시키는 정반합도 거부한다. 수백 개의 점들이 모조리 인과관계로 엮였지만 세 개의 단락은 각각 전혀 다른 대처능력을
요구한다. 이렇게 본다면 바둑이야 말로 진정한 ‘3악장의 예술’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 P. 36.
지금도 나는 바둑을 잘 모른다.
물론 예전에는 배우고 싶었고, 지금도 배우고는 싶지만, 솔직히 몇시간을 한자리에서 몰입할 자신이 없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직접 바둑을 두는 것보다 그냥 TV를 통해 대국 결과만 보는 것이 편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시간이 나는 짬짬이 정식으로 바둑을 배우고는 싶다. 전문가의 수준까지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국을 즐기는 한명의 애호가 정도로 만족하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에게도 바둑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욕심일뿐.
세월이 더 흐른 후에는 손자들과 함께 배우고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현란한 색상과, 온갖 과장과,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란함과, 눈이 핑핑 돌 정도의 스피드로 가득 찬 현세에서 바둑 같은 ‘은둔의 예술’이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묵묵히 바둑에 집중하다 보면 온갖 의혹과 번뇌가 눈 녹듯 사라지지 않던가. 361로를 헤매다 길을 잃으면 아무 골목에서나 엎어져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나면
된다. 숨어 지낼 수 있는 은신처를 가진 우리 바둑 애호가들은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행복하다.” - P. 67.
“복기는 어떤 면에선 자기 고백이요, 고해성사입니다. 패자는 복기를 통해 승자에게 응석도 부리며 패배의 아픔을 삭이고 동료에 대한 적의를
추스릅니다. 패한 자가 이긴 자를 통해 자양분을 얻는 교육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승자도 얻는 게
많습니다.” - P.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