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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 -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휴식이 되고 휴식이 삶이 되는 이곳
김재이 지음 / 부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새로움은 낯섬이다. 낯섬은 항상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가져온다.
새로운 땅, 새로운 삶은 그래서 흥미롭지만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지금까지의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린, 돌아갈 곳이 없이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란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이 있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커서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몰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 이젠 어느정도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지만, 불과 몇십년전만 해도 평생 한번 가볼까 싶은 곳이었다. 우리 부모님세대에서는 가장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 국토 가장 남단의 섬. 바람, 여자, 돌이 많은 삼다도의 섬. 4.3사건의 아픔이 서린 섬. 조선시대 가장 먼 유배지. 따뜻한 기온의 이국적인 풍경 등등 우리가 기억하는 제주도에 대한 이미지는
많다.
물론 중국인들의 막강한 부동산투자와 관련된 부정적 이미지들이 새롭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아직은 꿈과
낭만을 주는 섬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육지를 떠나 제주도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주살이 매일 같은 날 없더라. 사람에 지쳐 주저 앉으면 사람 덕에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 P. 32.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는 2011년 제주도 이주 붐 1세대인 부부가 전하는 꿈 같은 제주살이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도시의 빡빡한 삶에 지쳐 제주도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제주도의 오지마을에 ‘데미안 레스토랑’이라는 수제 돈까스 가게를 직접 리모델링하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만 영업하면서 제주도의 느린(?) 삶에 적응하여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같은 동네의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같은 시기에 이주하였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간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살면서 새롭게 만난 이들과의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그리고 언젠가 가파도로 이사해 제주살이 제 2막을 살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부부의 계획이, 그들의 용기가 부럽게 느껴지는 책이다.
“제주도는 간세다리의 섬이다. ‘간세다리’란 제주 사투리로 ‘게으름뱅이’를 일컫는다. 우리는 육지에서 언제 그렇게 살았냐는 듯 어느 틈에 간세다리가 되었다. 한데, 게으름뱅이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이 과연 이 땅에 존재하기는 할까. 사람의 터전을 옮기는 데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 P. 56.
“이주하고 나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느리게만 가는 제주도의 시간이었다. ‘빨리빨리’를 입고 달고 살았던 자영업자다 보니 늘 급한 성미가 먼저 날뛰었다. 그리고 그 자영업자 특유의 조바심과 조급함은 제주도에서도 우리를 따라다녔다.... 입도 후 한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이 느리게 가는 제주도의 시간이었다면, 지금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느리게 가는 제주도의 시간이다. 이제는 제주의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아 오히려 조바심이 날 정도다. 이곳에 온 뒤 참 많이도 느려진 우리 부부는 진정한 간세다리가 돼 볼 참이다.” - P. 151.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버린 ‘빨리빨리’의 삶.
그리고 잊어버린 나의 꿈과 나의 삶.
이제는 자식을 핑계로 더 이상의 도전보다는 현재의 생활에 안주해 살아가는 삶.
생각은 항상 여유있기를 원하고 그런 삶을 희망하지만 결국은 벗어나지 못하는 지친
삶.
무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가끔 떠나는 가족들과의 짧은 휴식조차도 힘겹게 느껴지는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언제쯤 나는 느림의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느림의 평온함과 여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을까. 내 생에 가능한 것일까.
마음만 가지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이젠 정착하여 지역주민이 된 저자의 삶이 부럽기만 한 것은 아마도 현재의 내 삶이 힘겹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곳에는 이곳 나름의 생존 법칙이 있고, 그 법칙에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건 오롯이 이주민의 몫이다. 게다가 애초에 ‘빨리빨리’가 통하는 곳이었다면 여느 대도시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 P.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