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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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발달한 전자제품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현대인들이 시시때때로 즐겨하는 것이 사진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특히나 스마트폰이 점점 더 좋은 성능으로 발전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과 소소한 일상을 찍어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거나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남기려고 하는 것일까?

혹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기과시의 욕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떠남으로 후손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욕심 때문일까?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하고 가족이 생길수록 무언가 남기고 싶어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자신의 흔적으로 남기고자 하는 본능은 카메라라는 발달한 문명기기를 가진 현대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과거의 인류, 우리의 선조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 현재의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

글이나 음악 등도 가능하겠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후기 초상화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은 저자가 2015년에 출간하였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에 이어 조선시대의 초상화, 특히 후기시대의 초상화를 다루었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카메라 옵스쿠라 핀홀 블랙박스 또는 어두운 방, 어둠상자 등으로 불리는, 정약용은 칠실파려안으로, 박규수는 파려축경으로 이름 지은 가 조선 후기 회화에, 특히 초상화를 그리는 데에 어떻게 활용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수많은 초상화와 함께 설명한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초상화가 얼마나 될까. 대략 1,000점 쯤은 남아 있을 것 같다.... 왜 그리 많이 그렸을까....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인공은 왕과 왕족, 사대부 고위관료와 문인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궁궐을 비롯하여 공사의 사당이나 영당, 서원과 같은 추모 공간에 군왕, 공신, 스승, 조상 등을 기리는 제의의 대상으로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즉 충효를 내세워 군신과 조상을 귀하게 여긴 유교사회의 문화지형 아래 발전한 것이다.” - P. 14~15.

 

조선 시대에 발달한 초상화는 그야말로 조선에서 차지한 사대부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왕을 그린 어진과 여성, 그리고 서민들의 초상화에 비하여, 사대부상이 현격하게 많이 제작되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닌 점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관복을 차려입은 도상의 관료다운 품위는 물론이려니와, 학자의 덕망을 살린 유복이나 평상복장의 선비다운 격조가 그러하다.” - P. 138.

 

우리가 쉽게 보고 넘어갔던 수백점의 초상화 속에서 저자는 조선시대의 회화 정보뿐만 아니라 당시의 과학문물과 사회상도 읽어낸다.

역시나 인문학적 사고는 하나의 사건이나 자료에서 다양하고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단순히 지나칠 수도 있는 초상화에서 시대상황이나 권력의 흐름 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저자가 연구하면서 해외에 있는 문화재들을 접하고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아직도 수많은 문화재들이 해외로 유출되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현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라도 제발 제대로 된 친일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우리의 잃어버렸던 정신을 바로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며, 해외로 무단 반출된 우리의 문화재들도 최소한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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