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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 낯선 장소로 떠남을 명받다
염은열 지음 / 꽃핀자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현대인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여행일 것이다.
그곳이 국내이든, 국외이든 상관없이 - 물론 국외라면 더욱 좋아하겠지만 - 자신이 살고 있는, 너무나 익숙해진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느낌과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어한다. 그것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섬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면서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처럼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벗어나는 자체가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만나게 되는 도적들과 맹수들이 항상 생명을 노리고 있기에 먼길을 떠난다는 것은 왠만한 용기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것도 강제적으로 가족과 이별하여 홀로 머나먼 길을 떠나는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먼 길을 떠나는, 그것도 강제로 홀로 떠나는 대표적인 이들이 죄를 짓고 유배를 가는 이들이었다. 물론 TV 드라마를 통해 자주 접했던 유배가는 모습들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일뿐 당시의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겠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배와 유배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전하는 기록에 의존한 잠정적인 이해라는 점이다. 그리고 동일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양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 P. 199.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 낯선 장소로 떠남을 명받다>는 드라마 속의 유배가 아닌 실제 그 당시 유배를 떠난 이들의 글을 통해 유배를 떠나는 것에서부터 유배지에서의 생활, 그리고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모습을 상세히 보여주는 책으로, 신분과 죄명, 유배지까지 완전히 다른, 그럼으로써 받는 대우도 천지차이인 두 사람, 즉 전라도 섬인 추자도로 유배를 간 중인인 별감 안도환의 ‘만언사’와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를 간 영남양반 김진형의 ‘북천가’를 통해 유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유배를 간 이들의 유배과정, 개인적인 그곳에서의 생활과 감정의 이해 등과 함께 유배를 통해 보다 발달한 문명과 문화의 지방확대라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면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내가 문학을 통해 만난 유배와 유배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유배문학을 더 잘 읽기 위해서는 유배라는 형법 제도와 당시 지방의 여건 및 조선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유배형이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배에 처한 사람들이 남긴 문학작품 읽기가 병행되어야 한다. 문학과 역사 혹은 제도와의 통합적 시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 P. 9~10.
“신분이나 재산, 가족 등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와 돌아갈 기약도 없이 생면부지의 땅에서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유배형의 본질이다. 그러나 그 생면부지의 땅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 거주자의 역사가 새겨지는 장소,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그래서 유배 이야기는 유배 죄인이 근신하고 벌 받은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익숙한 장소에서 낯선 공간으로 떠난 이야기, 여행자나 체류자 혹은 이민자로서의 생생한 적응의 이야기이자 새로운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 P. 31.
“한양과 지방, 지방과 지방간의 이동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대, 유배는 조선 최고의 엘리트이자 교양인을 지방에 보냄으로써 지방 학문과 문화의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리는 한편 한양과 지방이 연결되고 지방 문화와 사람들이 한양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배 죄인이 오감으로써 유배지가 세상에 알려지고 유배지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고 조선의 역사 또한 다시 쓰여진 것이다.” - P. 270.
여행과 유배는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같다.
그러나 이 둘은 떠남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냐, 아니면 강제적으로 보내지는 것이냐로 갈리며, 가족과 함께 가느냐, 홀로 가느냐로 또 갈린다. 또 여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낯섬을 마주하지만, 유배는 두려움으로 낯섬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유배처럼 무기한만 아니라면 어찌됐든지간에 낯섬은 삶에 다양한 활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주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자신을 위해 스스로 짧더라도 낯섬을 마주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유배는 승승장구하던 관료 문인들의 발목을 잡고 그들을 절망하게 했지만, 대신 공무에 쫓기며 살던 관료 문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허락했다. 유배지에서의 시간은 절망과 그리움, 처절한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에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듣는 경험을 함으로써 생각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스스로를 성찰하고 선비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새로운 문화와 학문을 접하고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할 수 있었다.” - P.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