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없는 예수 - 아직도 성경 속 ‘스토리’에 의존하는가?
우덕현 지음 / 상상나무(선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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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서 - 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약 30% 정도라고 한다. 약 천사백만명 정도.

그리고 개신교회의 숫자는 편의점보다 몇배 많은 약 8만개나 된다고 하니, 거기에서 봉사(?)하고 있는 목사들 숫자 또한 몇배의 수로 나타날 것이다. 엄청난 숫자다.

게다가 해외선교를 위해 자신의 인생과 자녀들의 인생까지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다면 정말 엄청난 숫자의 기독교신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 많은 신도들을 보며 하나님이나 예수가 기뻐해야 맞지 않을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말과 행동을 따르며 비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살고 있는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 나라가 이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공상과학 영화처럼 사후 천국만을 기다리는 게 현실이지 않는가.... 인간의 가슴이 바뀌지 않고, 사회 시스템과 세계의 구조가 점진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 P. 21.

 

 

 

종교의 편향적인 태도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보고 듣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인 알카에다나 IS 등의 뉴스를 매일 보며 그들의 잔인함과 잔혹함에 놀라곤 한다. 그러다보니 무슬림들이 오해를 받고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런 현상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만의 문제일까?

개인적 생각으로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들만의 틀에서, 자신들만의 해석으로, 자신들만의 신앙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극히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들이 극히 일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잘 믿는다고 생각되는 신앙인의 삶을 사는 이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진릿값처럼 보이는 잠언을 구했다고 해서 성경 속 인용된 장과 절의 본래 의미라고 주장하거나 그 장과 절을 대신하는 정답인 주석이 될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 새 옷을 입은 잠언이 종교적으로 성경 속의 예수 말씀을 대신하거나 그런 효력을 갖게 될 수가 없음을 분명히 해 둔다. 저자의 방식으로 성경 읽기에서 얻어낸 사유의 열매일 따름이다. 개인의 사유에 따라 얼마든지 말씀이 확장되고 융합되면서 더 큰 해석을 이룰 수 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한 인간이 특정한 시기에 성경을 어떻게 읽어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다.” - P. 255.

 

 

 

한국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친일, 신사참배 그리고 반공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모든 비신앙적인, 그러나 자신들은 극히 신앙적이라는 모든 행위들의 정당성을 반공의 논리로,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들로 덮어버렸다.

과연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수라면 뭐라 말했을까? 예수가 지금의 현실을 보며 기뻐할까? 지금 교회의 모습이 예수가 가르치고 원했던 모습일까?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온갖 더러운 행동을 한 삶의 행적과는 상관없이 옹호하는, 그래서 부정한 자가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방임하고 믿는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고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과연 예수가 외쳤던 진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예수 말씀의 대부분은 은유에 담겨 있다. 이는 성경 속에서 당신 스스로 확인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교회는 루터 이전이든 이후이든 자구적 해석을 공고히 할 뿐 은유 속으로 들어가는 일에 손을 놓고 있다. 이게 왜 큰 문제가 되느냐, 복지부동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P. 5.

 

 

 

성경을 하나님과 예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들의 신학적 틀에서만 이해해야만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신약성경은 예수 사후 100년 가까이 지나서 적혔고, 언어 또한 여러단계를 거쳐 번역되고 전해져 왔기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극단주의자들과 다를바 없다.

중요한 것은 교회나 목사, 십자가나 성경책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수가 말하고자 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찾고자 노력하고 따르고자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이 책 <스토리없는 예수>는 저자의 예수를 찾는 여정중 하나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성경에 대해 일점일획도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문서화 전 아브라함의 예화는 모닥불 가에서 날마다 조금씩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창세기 저자는 이런 변형들을 일정기간 수집해 자기 나름대로 각색해 문서화 했을 것이다.” - P. 61.

 

 

 

성경에 담겨 있는 예수의 말씀이 학술적으로 온전한그분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녹취록이나 공개적 연설문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수 말의 인용도 아람어에서 코이네로 변환된 것임을 전제해야 한다. 형용사 한 개까지 예수의 성대를 거쳐 나온 소리라고 신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바른 해석을 이룰 수 없다. 그렇더라도 복음서 속에 하느님의 힘이 개입되어 있음을 인정해야만 성경의 의미가 성립된다.” - P. 66.

 

 

 

현재의 한국 교회들이, 그리고 목사들이 한국 교회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오직 믿음만을 외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안의 많은 것들이 역사속 그들이 말하는 이교도들과 신화속에서 가져온 것임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뒤틀려질대로 뒤틀려진 기독교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들은 아닌지 다른 이들을 정죄하기 전에 자신들을 먼저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과 권력에 이미 무릎꿇은 목사를 포함한 자칭 예수를 믿는다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모습에서 과연 예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스스로를 성찰했으면 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성경 저자의 말을 귀담아듣기 위해서가 아니고 예수를 따르던 제자의 말을 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예수를 본받기 위함이다. ‘제자들의 메시지보다는 예수의 행동과 말씀에 초점을 맞춰져야 한다.” - P. 67~68.

 

 

 

예수의 말씀이 그 사회, 시대, 미래의 힘과 결합하여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 존재한들 무슨 의미가 될 수 있겠는가.” - 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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