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림의 인문학 - 세상을 이끌 것인가? 세상에 이끌려 갈 것인가?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사람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만들고 걸어간 모든 것들의 이야기이다.

누가, , 어떻게, 무엇을에 대해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럼으로써 사람에 대해 보여지는 것보다 더 깊은 곳을 알아가는 학문이다.

이런 인문학의 탐구를 통해 인류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교류하고 배우고,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빠름이나 양의 많음보다는 단 하나라도 깊이있는 성찰을 더 가치있게 여긴다.

하나의 깨달음은 곧 모든 것들과 본질적으로 통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인문은 더 큰 힘으로 인간사의 위대한 대열에 우리 영혼을 출전시킨다. 세상사에 참여하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원천적 힘을 제공한다. 인문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이런 실천적 성격에 기초한다. - P. 7.

 

사람에 대한 이해는 이처럼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그러해야 할 보편적 본성을 지닌다. 그러기에 인문은 사람을 돌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학문이자, 인간 작동의 원리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인간학의 정수이다. 인간학으로서 인문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물질문명의 한계와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 심성의 과도한 가파름에 있다. - P. 395.

 

<이끌림의 인문학 세상을 이끌 것인가? 세상에 이끌려 갈 것인가?>는 인문학자인 저자가 인류의 오랜 역사속 다양한 학문 영역간의 융합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관찰하여 이를 관통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단편적 지식을 아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이런 지식들의 다양한 접목을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눈을 가지게 됨으로써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창조가 가능함을 저자는 말한다.

물론 이런 통찰의 눈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자기 성찰과 관찰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품고 있는 다양한 학문영역의 풍부한 지식과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이를 통찰하는 저자만의 눈을 보게 해 준다. 이 말은 내 것이 아닌 저자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저자의 것을 되씹음으로써 또 다른 통찰을 얻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것이 된다는 말이다.

저자가 바라는 바 또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해 지금까지 유행하는 경영과학처럼 즉각적으로 생산성 향상이나 효율성 재고 같은 인스턴트식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다른 해법, 다른 인간상을 제시한다. 또한 상호 관계성을 주요 화두로 던진다. 나와 세계가 만나는 방식, 이 문제와 저 문제간의 관련성, 지향하는 가치와 누리고 싶은 삶의 간극에 초점을 맞추고 그 빈틈을 꽉꽉 메워 준다. 이 점에서 인간학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 P. 6.

 

세상의 모든 지식은 혼혈이다. 이 말은 언제고 맞다. 낡아 보이는 지식도 뒤섞으면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시각으로 사물이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 P. 47.

 

어디서건 깊게 뿌리내려야 산다. 그럴 때 그곳 토박이가 된다. 깊게 내린 나무만이 가뭄에도 말라 죽지 않는다. 이것이 인문의 힘이다. - P. 125.

 

인문은 단순히 머리를 채우는 교양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이끄는 우렁찬 행동 지식이다. 만약 잡다한 지식의 열병식을 한 끝에 자기주장과 실천이 없다면 그걸 어찌 인문이라 할 수 있을까?... 인문은 인간 사상으로 세상을 베고, 쓰러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 P. 407.

 

우리의 아이들은 아직도 우리때와 같이 단편적 지식의 교육을 받고 있다.

단순 암기와 사지선다의 교육만을, 오직 남들보다 점수를 더 받기 위한 무한경쟁의 교육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보다 먼 미래는 과연 지금보다 희망적일까?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만을, 그것만이 인생의 목표인양 세뇌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는 과연 부모인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단편적 지식의 바다속에서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어딜 가야할 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멀찍이 떨어져서 이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자기만의 눈을 가진 아이들의 미래가 더 희망적이지 않은가?

 

무를 갈 듯 무채에 대고 갈아댄 지식은 전체를 파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한다. 생명을 잘게 부수면 거기서 생명의 본질이 찾아질 것 같지만, 본질은 고사하고 어떤 완성된 생명도 찾을 수 없다. 사물과 세상을 보는 통합적 시각을 갖기도 어렵다.... 묶고, 엮고, 꿰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통째로 보라, 그럴 때라야 세상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 P. 251.

 

누구든 자신만의 을 가질 때 삶에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것이 눈을 속이지 않게 할 때라야 인간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 고유의 본성, 그리고 인간과 세계가 만나는 접점을 보는 건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럴 때 눈에 비친 것보다 더 많을 것을 본다. - P. 342.

 

생각이 아닌 행동만이 세상을 바꾼다. 철학적 삶은 행동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지금처럼 결의와 행동에 굼뜨다가는 청신한 나무가 썩어갈 뿐 아니라, 썩은 나무가 눈앞에서 자라나는 꼴마저 보게 될 것이다. 혁명 없이는 결코 혁명을 낳을 수 없다. 어제의 고요했던 진리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금에는 전혀 맞지 않다. - P.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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