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보수시대 - 미처 몰랐던 징후들
신기주 지음 / 마티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이 안정되면 그것을 조금 더 낫게 변화시키려는 욕구보다는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극히 일부의 보다 개혁적인 사람들도 있고 이들이 세계 역사를 바꿔가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성향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이후의 세대들로 하여금 국가나 조직보다는 자유로운 개인과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시대를 희망하게 했고, 결국 세계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대표되는 무한 경쟁의 사회로 나아갔다.

현재는 이런 성향이 그 극단까지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경제력의 편중과 빈곤, 지구의 황폐화를 불러왔고, 각국의 내부 또한 극심한 분배의 불균형 문제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한번 자극에서 쾌감을 느낀 사람은 그 기억을 버리거나 이겨내지 못하고 더 극단적인 자극을 통한 더 큰 쾌감을 원하듯이, 우리는 현재의 편중된 풍요를 새로운 방법으로 재편하려고 하기 보다는 과거보다 더 많은 풍요를 생산하여 자신이 그것을 누릴 수 있기만을 원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이 서로를 불신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런 전제가 결과적으로 신용을 낳지만 거꾸로 일부가 그 신용을 저버리기로 마음 먹으면 그것도 얼마든지 합리화가 된다. 어차피 모두가 자기 자신의 최대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마땅한 존재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선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자신이 피해를 뒤집어쓰는 게 오히려 비도덕적이다.” - P. 37.

 

<장기 보수 시대 미처 몰랐던 징후들>70~80년대의 경제발전시대와 90년대의 풍요시대, 그리고 IMF와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역사속에서 발생하였던 여러 가지 사건들 - 그 당시는 그리 깊이있고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 을 통해 대한민국이 점점 보수화되어가고 있음을 시장과 사회, 미디어, 정치 영역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책으로, 작지만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꿰뚫어보는 저자의 통찰을 느낄 수 있다.

권력이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음을 저자도 말한다. 자본이 권력을 통제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본의 영향을 받고 있는 정치권력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국민들의 선택에 의지함을 말한다.

물론 국민들의 선택 또한 언론이나 방송을 장악한 자본의 영향력 속에서,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국민이 정치권력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미 풍요를 체험한 국민들은 혁명적인 개혁보다는 순차적인 변화를 희망하게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순차적인 변화는 거의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을 저자는 말한다.

 

가해자는 말이 없고 가해자의 대리인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자해를 한다. 이게 자본주의의 맨 얼굴이다. 한국 시장경제가 바닥부터 붕괴되고 있다.” - P. 40.

 

꼬리가 꼬리를 지배하는 시장에서 머리가 꼬리까지 지배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풍요의 저주 속에서 영생불사 비즈니스를 도굴당하고 있다. 기업들이 살기 위해서 사람을 잡는다.... 머리의 탐욕이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라는 자본주의의 엔진이 꺼져가면서 마지막 안전지대로 도피하려는 기어브이 전략이다. 머리가 꼬리를 먹어치우면서 산업 생태계는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뱀처럼 변질돼가고 있다. 영생불사 비즈니스는 머리와 꼬리 모두의 것이다. 모두 같이 살아야 해서다. 다 같이 죽어가고 있다.” - P. 59.

 

정치의 본질은 누가 대권을 잡느냐의 정쟁이 아니다. 어느 세력이 왕이나 대통령을 앞세워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할 것인지의 이권 다툼이다. 이념도, 국가도, 왕조도, 사상도, 제도도, 결국 내부 기득권 세력들끼리의 세력균형에 따라 이용될 뿐이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대통령은 조선 시대 왕처럼 권력의 주인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일 뿐이란 얘기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아놓고 민본의 정치를 기대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의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지배 계층의 사명에 복종할 뿐이다. 권력이 없는 국민을 향해 정치를 하면 권력을 잃는다. 진짜 싸움은 늘 그렇게 시장에서 벌어진다.” - P. 253~254.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염치를,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또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소위 지도자계층의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들을 선택한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했을까?

그들에게 맡겨진 우리의 미래는?

앞으로 우리는 더 먼 미래를 위해 또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정치 개혁이 경제 개혁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정말 급하면 시장이 아니라 국회로 가서 정치부터 뜯어고쳐야 한단 얘기다.... 87년 체제를 개헌해서 97년 체제를 개혁해야 한단 말이 된다. 해법은 시장 안에 있지만 희망은 시장 밖에 있다.” - P. 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