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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평점 :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하더라도 보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자신들이 배운 정도와 나이, 직업에 따라 각자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20~30대의 젊은이들은 빠르고 흥미로운 것을 좋아할 것이고, 불혹을 넘기면서는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자신이 살아 온 추억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더 선호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모든 이에게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내에서 여행을
꿈꾼다.
“여행, 그 이동의 방법은 우리 내면의 동경을 상기시킨다. 이동하기 때문에 더 좋은 곳으로, 더 아름다운 곳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반성한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며, 우리를 만든다.” - P. 13.
<여행의 속도>는 도시 건축학자인 저자가 각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새롭게 건축된 건축물들과 일부러 찾아간
건축물들을 보고 느낀 것을 여행의 교통수단과 그 이동속도에 따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총 7장의 이 책에서 저자는 250~300km/hr의 고속철도로 하는 여행에서 시작하여 0km/hr의 묘지까지의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 담겨져있는 건축물들의 의미와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어쩌면 이 교통수단의 차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화되는, 피가 끓는 청춘의 속도에서 점점 느려지는 우리 인생의 움직이는 속도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우리가 직접 체감하는 세월의 속도는 나이만큼 빨라지겠지만.
대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의 글의 주요 대상이 일본이고, 우리나라의 건물은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이목을 끌만한 새로운 근현대 건축물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고속열차는 청춘의 뜨거운 피다. 짧은 시간 안에 꿈에 닿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질주본능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중년의 여행은 청춘의 그것처럼 느긋할 수 없다. 일반열차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생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 P. 34.
“묘지에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생명의 종착점이다. 그들의 여행은 이미 끝났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여행 속도는 ‘0’이다. 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에게도 이곳은 내면의 불타오르던 욕망을 잠시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여행의 속도는 점점 낮아질 것이고, 결국은 조용히 멈추어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 354.
직업과 나이를 떠나 여행은 누구에게나 약간의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준다.
건축가인 저자는 각 도시를 여행하며 새로 지어진 건축물들을 위주로 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본다. 또한 도시를 보고 문화를 본다.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닐까.
불혹을 넘어선 지금의 나는 아마도 100km 이하의 속도로 여행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천천히 주변의 경치와 건물, 도시를 보며 과거와 미래를 볼 나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젠 너무 빠른 속도의 여행은 힘만 들 뿐이다.
“만약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진짜 세상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상아탑 안에서만 떠드는 탁상공론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지금 당신의 두발을 움직여 거리로 나가라.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라. 민가의 주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 주택가의 피아노 연습 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서로
뒤엉키는 것을 들어보라. 빗물이 얼굴을 적시는 느낌과 오래된 골목의 담벼락에 배어 있는 사람 온기를
느껴보라.” - P.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