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 왕자 -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정장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평점 :
어릴 때는 그저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뭐든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철이 없어서였다. 세상 물정 모르고 꿈과 희망에만 가득 찼었던 그때는 미처 몰랐다. 다 큰 어른이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게 될 거라는, 그리고 다시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철부지 어린애였던 시절이 있었고 바오밥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면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1943년, 미국에서의 첫 출간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아 왔고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만 무려 400여 곳과 출판 인연을 맺고 있다. 이쯤 되다 보니 전 국민이 다 아는 그림 동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누구나 쉬이 읽고 좋아할 만한 동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오랜 세월 동안 회자되는 반짝이는 문장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누군가의 의미가 되고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것, 장미와 여우와 비행기와 비행사와 사막과 양과 뱀, 소행성 B612와 수많은 별들. 이 모든 걸 줄줄 외울 만큼이나 나 역시 《어린 왕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니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을 맞아 문예출판사에서 야심 차게 기획했다는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생텍쥐페리 모국인 프랑스에서는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을 기념하여 《La belle histoire du Petit Prince(어린 왕자의 아름다운 역사)》라는 책을 펴냈는데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그동안 수집한 어린 왕자 자료들로 가득했다. 문예출판사의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은 이것의 번역본이다. 그러니까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이 특별한 이유는 《어린 왕자》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어린 왕자 대백과'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은 일반판과 한정판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가 소개할 한정판은 특정 인터넷 서점(Y**24)에서 독점으로 출간한 것이며 더블 커버와 양장본 컬러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한정판은 기본 금박 커버에 파란색 홀로그램 커버가 또 싸여진 2개 커버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장본 컬러는 분홍색인데 다수의 서점에서 판매하는 일반판은 기본 금박 커버 1개이고 양장본 컬러는 푸른색임을 확실히 짚는다.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은 크게 세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첫 번째인 '어린 왕자의 탄생' 파트에서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쓰기까지의 과정과 미국에서 초판이 먼저 나온 사연, 미출간된 한 장의 축약본 번역, 생텍쥐페리의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에 대한 기억들, 어린 왕자를 준비하면서 그린 데생과 수채화가 실려 있다.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번역본 책의 판형과 종이의 질감, 인쇄의 퀄리티 모든 면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감상하면서 눈이 즐거웠다.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나치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비행기 조종사이자 프랑스 작가였던 생텍쥐페리는 1942년 여름 즈음 미국에서 《어린 왕자》 집필 작업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1943년 4월 6일, 역시 미국에서 《어린 왕자》는 첫 출간이 되었다. 집필하는 동안 여러 지인과 교류를 하던 생텍쥐페리는 어떤 별의 특정 장면을 뺄지 말지, 어린 왕자가 해가 지는 걸 몇 번 보는 걸로 할지에 대한 고민도 했다고 한다.
읽으면서 특히 안타까웠던 부분은 그가 고국 프랑스의 정치 상황이나 주변인들, 특히 미국 체류 중인 자국민들의 모함에 고통을 겪고 예민해진 상태로 불행과 슬픔 느꼈으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깊은 고독을 헤어 나오기 위한 방편으로 《어린 왕자》를 썼다는 거였다. 생텍쥐페리의 심리를 이해하고 《어린 왕자》를 읽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꽤 있을 것이다. 느껴지는 감정의 차이가 달랐다. 두 번째 파트는 '어린 왕자' 본편이고, 세 번째 파트는 '어린 왕자 읽기' 즉 어린 왕자 이야기에 대한 해설 모음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질의 구성이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람들이 내가 쓴 이 책을 건성으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생텍쥐페리의 바람을 나는 이루어 주었다. 정말이지 진지하고도 열심히 읽었고, 읽다가 울컥해 티슈로 눈물을 훔쳤고, 그러다가 코를 훌쩍이며 노트에 서평 준비용 감상을 썼다. 나는 이번에 어린 왕자를 다시 한번 더 읽으면서 그의 마지막이 어린 왕자의 결말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 그 자체이자 그의 분신 혹은 동반자였던 거다. 사막에 추락한 비행 조종사와 어린 왕자의 조우는 어쩌면 어른 생텍쥐페리와 어린 생텍쥐페리의 세월을 건너뒨 교감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마음속에 늘 존재하던 어린 자아가, 자신이 창조한 어린 왕자라는 대상을 통해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따라서 생텍쥐페리는 우리가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이미 그의 어린 왕자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더블커버 특별판 (양장본)
사진 위주 상세 리뷰는 개인 블로그에 ☞ https://c11.kr/cu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