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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평점 :
※ 이 책은 출판사가 서평용으로 제공한 가제본입니다.
※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을 만한 몇몇 단어들은 ○처리를 했습니다.
《아낌없이 뺏는 사랑》은 피터 스완슨의 처녀작으로 미국에서는 2014년도에 출간을 했다. 한국에는 그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작년에 먼저 발매가 되었는데 아마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더 화제여서 이 책 먼저 한국에 소개된 것이 아닐까 넘겨짚어 본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한국판이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화제였던 작년, 남들의 의견을 좇기보단 취향에 따라 책을 스스로 골라보는 성향인 나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소개 글만 훑었을 뿐 책을 읽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다. 피터 스완슨의 책을 데뷔작부터 차례로 읽게 되었으니까.
한때 유명 문학잡지사였지만 이제는 망해가는 회사의 경영관리자이며 대부분의 일상을 멍한 상태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30대 후반 남성 조지 포스.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20년 전 첫사랑, 리아나 덱터. 그녀는 사람을 두 명이나 죽인 혐의로 수배 중인 살해 용의자로 20년 동안 잠적 상태였고 그동안 어떠한 연락조차 없었다. 심지어 조지와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다음 날 사라져버렸다. 조지는 20년 만에 불쑥 나타난 그녀를 두려워하긴커녕 그녀의 무리한 부탁까지 거절하지 않고 돕는다.
하지만 8월 밤의 무언가가 단골 술집에서 봤던 리아나의 존재와 합쳐져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그는 대학교 1학년 1학기 그 잠깐의 뜨겁고 달았던 첫사랑에 잠식된채 살고 있었다. 20년 동안 그녀를 잊지 않았고 때때로 추억했으며 위험함을 감지하면서도 그녀를, 그녀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아나가 공격태세를 취한 뱀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그래도 ○○ ○○○가 리아나에게 할 짓을 생각하니 보호 본능이 일어났다. 조지는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흔치 않은 상황이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리아나는 제럴드 매클레인에게서 훔친 돈다발이 든 가방을 자기 대신 전달해달라고 조지에게 부탁했고, 그는 그 일을 돕다가 살인 사건에 얽히고 만다. 조지가 리아나를 도운 데는 그녀에 대한 미련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물론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하겠다고 했군요."
"지루했거든요."
첫사랑의 가련함과 미모에 홀려 지켜주고 싶다는 애틋함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일상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 조지는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는 진리를 자신의 선택으로 몸소 체험하고 깨달았다, 그러나 차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을 거란 보장도 없다. 그만큼 리아나는 그에게 끔찍하게도 끊어내기 힘든 존재다. 책 읽는 내내 그녀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라고 느꼈고 조지는 무모한 불나방 같았다.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기에 줄거리를 다 적는다는 건 조심스럽다. 반전 있는 영화처럼 결말과 연관 깊은 내용을 노출하는 건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테고 서평으로 그런 내용을 미리 본다면 책을 읽을 예정인 사람들의 흥미도를 반감시킬 테니 흥미로울 부분까지만 적당하게 끊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책에서 직접 접하기를 바라며,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더 적어본다. 리아나 덱터는 이름이 세 개다.
《아낌없이 뺏는 사랑》의 원제는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다. '시계 심장'이 무슨 뜻인지 궁금히 여기면서 읽어내려갔더니 책 속에 관련 내용이 나왔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병에 걸린 것과 같아. 혹은 내 안에 시계가 있거나. 심장처럼 째깍거리는 시계. 이 시계는 언제든 종료 알람이 울릴 수 있고, 그럼 ○○○ ○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아, 그래서 시계 심장을 가졌단 제목을 지었구나 하고 납득했다. 한국어로 정식 발매된 번역서를 읽는 내내 들던 생각은 도대체 왜, 원제를 저렇게 변경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사실 원제 그대로 출판을 하면 제목에서 주는 강렬한 인상이 크지 않을 거라고 짐작을 했던 걸까. '책은 제목이 반이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아낌없이 뺏는 사랑》은 책의 내용과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네이밍으로 보인다. 리아나가 했던 게 과연 '사랑'일까? 조지는 그런 그녀를 여전히 '첫 사랑'으로 추억할 수 있을까? 출판사와 나와 작가와 책 속의 조지는 각각의 견해가 다를 수도 있을테지만, 난 아직도, 역시 의문스럽기만 하다. 어찌되었든 어쩌겠는가. 이미 그렇게 작명된 것을.
이제야 고백하자면 맨 처음 프롤로그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확 끌리지 않았단 거다. 프롤로그와 초반부의 고비를 견뎌냈더니 잘 읽혔다. 부디 인내심을 갖고 책장을 넘기기를 조언한다. 아주 흥미진진해! 정말 재밌어! 이런 느낌이라기보단 조지와 리아나에게 화를 내면서 읽었다. 내내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드라마가 있는 것처럼.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다. 조지 포스와 리아나 덱터 둘 다 비호감이지만, 책은 흡입력 있었고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가 붙어서 하루도 걸리지 않고 완독했다.
치정을 바탕으로 쓴 스릴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읽어도 좋다. 다만, 사랑에 눈이 멀어 호구를 잡히는 캐릭터가 싫은 사람은 미리 혈압 주의.
책을 읽고 괜한 미소지니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란다. 리아나는 외형만 아름다운 '괴물'이었고 그런 괴물은 현실에도 널렸지만 성별 구분이 없으니. 제비나 꽃뱀이나.
내 취향에 부합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피터 스완슨에게 흥미가 생겼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소득이 있었던 독서였다.
나에게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란? 작가의 필력과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