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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 -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한귀은 지음 / 홍익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내 인생을 바꾸진 못했으나, 이런 의견 이런 생각도 있구나를 알려준 책.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417/pimg_7929901511403305.png)
삶이 문장과 만나는 순간에 관해 쓰고자 했다.
텍스트의 문장이 진실이 되는 때는
그것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뿐이다.
(7p, 프롤로그)
그렇다.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글은 생동감을 지닌다. 하지만, 이 작가와 나는 딱히 공통분모가 없어서 그리 와 닿지는 않았다. 이 책은 총 7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후반부는 중년(나이 듦), 부모와 자식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공감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내 관점에서는- 불편한 부분이 있었는데. 신 과장이라는 여자가 유부남과 사귄 이야기나 작가가 '잘 알던 사람'이라고 지칭한 누군가의 자살에 대한 분석과 단정이 조금 많이 불편했다. 우울증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그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단정 짓고 판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알던 사람'이라고 지칭했으나 부고를 접한 이후 실은 잘 몰랐다고 스스로 인정했고 딱 직장 동료로서만큼만 부의금을 냈다면, 그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람이 어떠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란 단정으로 인해 당사자의 가족이나 그를 아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글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까.
앞서 지적한 것처럼 공감이 가지 않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는 자 방황한다>(25p-29p) 부분은 유익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성실한 여자 콤플렉스와 한 묶음이다. (중략) 하지만 알지 않는가. 이런 여자 한번 사랑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고 다 퍼주다가 역시 정신 못 차린 상태에서 남자에게 상처받는다. (중략) 남자에게 진짜 잘해주는 방법은, 그 남자에게도 자신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중략) 사랑을 잘하는 여자는 상대가 자신을 더 잘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자다.
(27p-28p)
맞는 말이다. 비단 남녀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본다. 다 퍼주고 그만큼 보답받지 못한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스스로 상대방에게 그럴 '기회'를 줘 한다. 무엇이든 간에 과하면 아니 한 만 못하니까.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제자리를 찾으려면 100퍼센트를 모두 채우지 말고 70퍼센트까지만 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70퍼센트까지만 하라니 도대체 70퍼센트가 어느 정도일까. (중략) 30퍼센트를 남기면 된다. 그러니까 내 노력, 내 에너지, 내 몸과 시간이 70퍼센트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30퍼센트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그것이 '여유'이다. 여유는 기다림을 준다. 여유와 기다림을 아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29p)
신영복의 「담론」에 나온 문장을 작가 나름대로 해석한 내용인데, '100퍼센트를 채우지 말고 70퍼센트까지만 하라'는 말은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로 명쾌했다. 항상 완벽주의를 추구하다가 제풀에 지쳐 의지가 꺾이고, 100퍼센트의 만족감을 얻지 못하면 좌절하곤 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도 100퍼센트 꽉꽉 채워서 넘치게 성과를 내다보니 오히려 인정보단 견제와 시기를 더 받은 경험이 있다. 앞으로는 적당히 덜어내고 약간은 모자라게 70퍼센트의 결과물을 제출해야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작은 위로를 얻었다.
그 외 <인터뷰 마인드>(42p-47p)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인터뷰를 하거나 면접을 볼 때 너무 잘 보이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중략)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멋진' 자기 자신을 정확하고 적확하게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45p)
인터뷰나 면접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자존감'있게 스스로를 어필하며 삶을 살자.
알렝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 속 문장에 대한 해석도 정말 와 닿았다.
완전히 순수한 감정도, 완벽하게 순수한 사람도 없다. 어느 정도는 다 희극적이고 웃기고 위선이 깔려 있다. (중략)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뚫고 나갈 '자아'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 (중략) 두려워서 피할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태도로살아야 하는 것이다.' (중략) 이 세상에 양면성을 가지지 않은 것은 없다. 우리는 그 양면 중 아름다운 면을 더 키워가야 한다.
(93p)
아름다움은 강하고 순수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자 하는 의지, 순수하고자 하는 열망에 있다. 그것이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몫이다.
(94p)
그러니까,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며 완전하지 못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책을 펼치기 전엔 책 제목 자체에 편견이 있었다. 페미니즘적인 시선으로 쓰인 책이 아닐까 하는.
여자가, 여자니까, 여자라서 이런 소리 자체를 싫어한다.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할 때 외에도 페미니즘적인 시선에서 언급하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문장만 언급되어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기우였다. 나처럼 책을 접하기 전, 제목으로 인해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걱정 따윈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총평을 하자면 「여자의 문장」은 소소한 깨달음과 과제를 던져 준 책이다.
심금을 휘저을 정도의 크나큰 울림은 없었으나 어느 정도는 여러 방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책 속에 언급된 다양한 책과 작가, 예술가, 영화 작품을 찾아보는 것은 곧 나에게 주어진 '흥미로운 과제'다. 순수한 탐구적 호기심에 의한, 내 의지이다.
이런 동기 부여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꽤 비판적인 독서를 해보았다. 내가 읽고 공감이 가질 않는 부분까지 무조건적인 칭찬과 추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지만 내 스스로의 기준으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이 책이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으니 꼭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