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경영
조조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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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소 부담스러운 책이다. <천하경영>!!... 이 책은 삼국지의 유명한 영웅 조조의 문집이다.

이 책은 아쉬운 부분과 반가운 부분이 있는 책이다. 먼저 반가운 부분은 조조의 저서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고, 아쉬운 점은 완역본이 아닌 편역이라는 점이다. 1998년도에 나온 책으로 꽤나 연식이 지난 책이지만, 이 책을 끝으로 조조의 저서는 번역되지 않고 있다. 조조에 대한 개론서나 조조에 대한 평전, 삶을 조망하는 책, 처세서 등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조조가 쓴 글에 대해서는 아무도 번역을 하고 있지 않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그래서 조조를 찬양하는 동양 고전 전문가가 주로 책을 내는 출판사에, <조조집> 완역에 대한 건의를 했는데,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는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ㅠㅠ..

 

아무튼, 따라서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조조의 글이라는 점이다. 글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도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조조를 평가하기에 앞서 평전이나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의 글을 살펴보고 그에 대해서 조망을 해야 한다. 특히나 다른 개인 저서들과는 다르게 조조는 신분이 군주였다. 군주의 특성상, 조조의 문집에는 공문서가 많다는 뜻이고, 이 부분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자의적으로 글을 써 내려간 모습보다는 어느 정도의 객관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공문서도 자의적인 부분이 있긴 하다만... 대체적으로 본다면 그렇지 않나 싶다.)

 

작은 책이고 짧은 책이라서, 읽는 건 금방 볼 수 있다. 다른 삼국시대의 군주들과 다르게 조조는 특별한 점이 있었으니,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읊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조의 문집인 이 책에는 조조의 시가 처음으로 나온다. 역시 말위의 군주라 그런지 시에서 기개가 느껴졌고 웅장함이 느껴졌다. 더불어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슬픔이나, 백성들의 고통 등을 적나라하게 진솔하게 표현하는 부분에서 새로운 조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비와 손권의 경우는 사실, 그렇게까지 공부에 취미가 없었는데, 조조는 전쟁터에 나가서도 밤에 독서를 하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은 군주다. 그런 군주라서 그런지, 시를 읊는 그런 모습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였다. (유비와 손권은 남긴 시가 없다..)

 

시를 다 보고 나면 대체적인 공문서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부분은 조조의 실리주의가 잘 나타나있다. 동양은 대체로 관료나 인재를 뽑을 때 중요시하는 것이 도덕성이다. 능력이 없더라도 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천거하여 일을 맡기는데, 조조가 활동하던 시대는 난세였다. 책의 여러 구절에는 능력만 있으면 덕성이 좀 모자라더라도 천거하여서 쓰라는 조조의 글이 많이 있었다. 조조는 시국이 치세가 아닌 난세라서, 이런저런 덕성 같은 것을 따질 시기가 아니니, 능력만 있으면 인재를 천거하여 올리라고 했고, 부하끼리 덕성에 대한 흠을 잡자, 중재하며 지금은 그런 부분을 서로 간에 지적할 때가 아니라고 일갈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부분에서 조조는 기존의 전통적인 동양의 인재관을 탈피하며, 능력을 앞세운 인재관을 보여줬다. 이런 과감한 부분 때문에 그가 숱한 군웅들을 이기고 황하 일대를 장악했겠다 하는 느낌도 받았다.

 

조조는 <삼국지연의>에서 굉장히 탐욕스러운 군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역사의 조조는 그렇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글 중 놀란 것은 옷을 10년째 같은 것을 꿰어 입을 정도로 검소했고,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지 않는 모습 등이 있는데, 군주의 입장에서 솔선하여 검소를 행한 부분에서 놀라웠다. 더불어, 죽기 전에도 유언에, 쓸데없이 과하게 상을 하지 말고, 전시 상태니 모두 짧게 조문만 하고 각자 맡은 일이나 충실히 하라는 부분에서, 그의 생활 역시도 실용주의적인 모습이 보였다는 점이다.

 

조조는 굉장히 모순적인 인간이다. 잔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한없이 너그러울 때도 있는 군주였다. 거기다 그가 주로 본 책은 놀랍게도 유학이다. 그의 치국에 대한 여러 부분을 본다면 법가적인 시각이 많으나, 이 책에 나온 그의 글에는 유학서들을 인용한 글이 대거 나왔다. 조조가 주로 봤던 책은 유학서와 병법서다. 게다가 시나 여러 글을 통해서 그는 유학의 성군이 되기를 갈망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의 치국의 방법은 법가의 처세가 돋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는 자기 내면의 수양은 유가적 사상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런 부분을 조조에게 배웠다. 유학은 솔직히 문제가 많은 학문이긴 하지만, 마음을 깔끔하게 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조조는 외법 내유를 썼던 모순적인 군주였다.

 

조조의 가장 큰 공은, <손자병법>을 집대성 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손자병법> 13편은 조조가 모두 정리한 <손자병법>이다.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은 예전에 유실되고 조조의 시대에는 여러 <손자병법>이 난무하고 있었다. 조조는 그 병법서들을 다 모아서 스스로 <손자병법>을 정리하여 13편으로 추슬렀는데, 지금의 현행본을 만든 것이 바로 조조이고 이 <손자병법>에 주석을 써넣었다. 역대 <손자병법>에 주석을 단 여러 위인들은 조조를 의심했다. 과연 이 <손자병법>의 원문이 조조의 자의적 개입이 있을 거라는 온갖 추측을 다 했다. 촉한 정통론이 대두되자 조조의 주석은 매도되기 시작되고 가치 폄하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대에 은작산 죽간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는데, 여기에 죽간본 <손자병법>이 출토됐다. 그래서 현행본 <손자병법>과 비교를 해 봤는데,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조조의 정리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원본을 복원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만큼 조조는 병법에도 조예가 깊었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나 <손자병법>의 서문에 조조는 역시나 유학서들을 대거 인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역시 조조의 해박한 유학 경전의 지식이 돋보이는 서문이었다. 조조는 이 <손자병법> 외에도 <사마법>에도 주석을 달고, 스스로도 병서를 지었다고 하는데 아쉽게 다 유실됐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손자병법>의 주석을 <맹덕신서>라는 -_- 것으로 폄하하였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손자 13편을 조조가 다 정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엔 안 나왔지만, 내가 읽어본 조조의 주석이 달린 <손자병법> 역시도 주석이 간결하면서 핵심적인 논의를 잘 이끌어내고 있었다. 조조의 글쓰기 특징은 장황하지 않으며 핵심만을 찌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주석에도 잘 나타나져 있다. 당시 한나라 학풍은 주석을 엄청나게 길게 고증하는 훈고학이 발달하였는데 대세를 따르지 않고 짧게 쓴 면에서 조조의 실용주의적인 부분도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글은 대부분 경전이 인용되고 있으며, 숱한 역사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박학다식함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조조는 유비와 손권과는 다르게 참모들과 스스로 회의를 주도했던 군주였다. 보통 유비와 손권은 뛰어난 명참모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따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조조는 달랐다. 조조는 스스로도 뛰어난 모사였고, 당대의 참모들과 의견을 나눔에도 막힘이 없던 영민한 군주였다. 그런 그라서 참모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기보단, 참모들의 의견을 다 듣고 스스로 종합적인 결론을 내린 적극적인 군주였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실패를 해서, 실수도 하곤 했지만, 전체적으로 참모들과의 교류를 봤을 때 능동적인 군주였다.

 

그런 바탕에는 해박한 지식과 지혜가 뒷받침되야 하는데, 그런 증거를 책에서 볼 수 있었다. 여러 선현들의 책을 인용하는 부분 등에서, 그의 탁월한 독서능력이 보였다. 거기다 신하들에게 학문을 권하는 교지를 내리는 등 문풍에도 힘을 썼던 군주였다.

 

게다가 손권에게 적벽대전 때 보낸 교지 등을 볼 땐, 좀 허세도 잘 부리는 위인인 것 같았으며, 적벽 교전 후 손권에게 보낸 교지에는 변명을 하는 부분 등에서 재미있는 모습도 보였다 몇 마디 옮겨서 오자면

 

'적벽에서의 전투는 때마침 병을 얻은 터이라 배를 태우고 물러나 주유로 하여금 헛된 명성만 얻게 하였다.'

 

'적벽에서 곤경에 빠진 것은 운몽택을 지나던 중 짙은 안개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에서 정신승리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들에게 남긴 글 역시도 인상적이었다. 셋째인 조식에게 보낸 글의 요지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마라.'라는 주제로 글을 짧게 보냈는데, 이런 부분에서 영웅 역시도 여느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조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닮은 점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습관, 시를 좋아하는 습관, 특히나 병법서를 좋아하는 습관, 등등 비슷한 점도 보였다. 그런데다 현실적인 그의 시각 역시도 공감하고, 능력 위주의 인재관, 실용주의적인 면은 본받아야겠지만, 잔인한 점은 본받아선 안 되겠다. 어쨌든, 국내에 나온 유일한 조조의 문집이고, 완역이 아니라서 너무나도 아쉬운 책이다. 조식의 문집인 <조자건집>은 완역이 되어 출간됐던데, 왜 그보다 더 위대한 조조의 문집은 아직까지 완역되지 않는지 참 아쉽다. 제갈량의 문집은 완역됐는데... 하루빨리 <조조집>이 완역이 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천하경영(ㅠㅠ) 이런 거 좀 제목으로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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