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임건순 지음 / 시대의창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독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옛 글들을 탐구하고 싶은 특이한 취미가 있어서 부담 없이 문헌들을 들추고 있지만, 사실 나의 이런 괴짜스러운 취미를 온전하게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전은 현세에 통용되는 사상이 아니고 지나간 사색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알아듣기 쉽게 편리하게 써 놨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불친절한 편집에 도통 지금과는 맞지 않은 내용들 때문에 사실 고전과 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언어도 사상도 관념도 현세와 맞지 않으니 일단 적응 자체에서 어려움을 느낄 법 하다.


최근 '인문학 만능론'이 대두되면서, 고전에 대해서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기존 고전들을 재해석한 입문용 텍스트도 많이 나왔으며, 고전 만능론을 칭송하는 개론서들도 많아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갑작스러운 대중의 고전 관심이 아니꼽게 보이기도 했다. 수수깡 갈대처럼, 예전에는 천시하고 밥 안되는 학문이라고 비난하던 대중이 갑작스럽게, 몰아부는 인문학 만능론에 너도 나도 고전을 칭송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원래부터 고전을 읽어오던 나로서는 꼬아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건대, 이런 나의 베타적인 시각 역시도 옳지 않음은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다. 인문학을 성행하자!, 인문학을 다시 조명하자는 움직임에 비해, 실속 없는 책들이 너무 난무하고 있어서 마치 보여주기식의 인문학 만능론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었다. 사실 이렇게 대중적으로 인문학의 관심이 높아졌을 때, 정부나 출판업계에서는 좀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데, 입문자용 도서들이나 강연만 난무하니 솔직히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 더 심화 학습을 하지 못하는 중견층 고전 마니아들은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지금 시대에 재해석되고 심화 학습이 이뤄지는 사상은, 유명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저자들의 사상만 조명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동양 사상으로 본다면, 사마천의 <사기>의 재조명, 그리고 사상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유교사상 중심주의 등등


주류 사상의 재조명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유교사상이나, 사마천의 <사기>의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문제는 주류 사상이 아닌 비주류에 대한 조명이 이뤄져야 하는데, 도대체 이런 부분에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중의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금의 인문학 열풍이 아직도 '사상적 편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병가 사상에서도 맨날 <손자병법>만을 강조 또 강조하고 있다. 아니 무슨 병서가 <손자병법> 한 권 밖에 없는가? 알고 있다. 손무의 병서가 워낙 중요하다는 것은 병가에 한때 빠져서 지낸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도대체 <육도>, <삼략>, <사마법>, <이위공문대>, <울료자> 등등의 병법은 왜 조명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무조건 병법은 <손자병법>만이 최고고 <손자병법>만이 병법의 정도라고 기존의 책들은 가르쳐왔다.


그러던 찰나 나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책을 발견했다. 바로 손무와 대칭적인 인물인 오기, 즉 오자라고 명칭 되는 사상가를 다룬 책이었다. 책은 개론서이기도 했지만, 개론서를 넘어서, 저자 특유의 해석으로 오기와 <오자병법>을 독해하고 있었다. 물론 한 개인의 해석이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랴, 나는 이런 시도가 참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저서 중 예전에 유의 깊게 본 책이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의 전작인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난 천민 사상가>였다. 전작에서 저자는 유교와 쌍벽을 이뤘던 묵적(묵자)의 사상을 올바르게 복원하고 공자에 의해 가려진 그의 사상을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주의 깊게 읽었다. 현전하는 묵자 사상의 책은 <묵자> 한 권뿐인데, <묵자>에 대해서 번역한 출판사도 드물었고, 그런 상황이니 묵자에 대한 삶의 조명과 사상의 조명을 다룬 책은 공자에 비해서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 현실이었다. 저자는 그래서 묵자에 대한 책을 썼다.


그리고 저자는 이번에도 손무에 가려진 오기에 대해서, 소상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책은 오기의 삶을 다루면서, 오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 그리고 오기의 군대 사상과 병법 사상, 그리고 나아가 정치사상과, 리더십까지 전체적으로 조망한 역사 책이기도, 고전 해설집이기도 했었다. 책값이 조금 비싼 편이긴 했지만, 서점에서 살펴보고 충분히 구매 가치가 있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얼른 샀던 책이었다.


유교사상을 공맹(공자와 맹자)의 사상이라고 하고, 도가사상을 노장(노자와 장자)의 사상이라고 한다면, 병가 사상은 손오(손자와 오자)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멸의 역사서라 칭해지는 <사기>에 의하면 당시 백성들의 집에는 집집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들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두 책은 동등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손오병법이라 통칭되며,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동등한 위상으로 대우받았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다르다. 병법의 A 이자 Z는 <손자병법>이고 다른 병법서들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 물론 <손자병법>은 뛰어난 병서다. 나에게 있어서도 충격과 감동을 전해 준 병서이고 인생의 책 중 한 권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고대와는 다르게 다른 저서들은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손자병법>만이 추존되는 작금의 현실이 조금 안타깝긴 했었다.


책은 오기의 <오자병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기술하지 않았다. 부분 부분마다 잘라서, 재조립을 거쳐,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더불어 <오자병법>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 예시로 든 부분은 오기의 실제 역사적인 행동을 예로 들었었다. 사실 아무 지식도 없이 <오자병법>을 읽으면 책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대강대강 읽어나갈 수 있다. 동양 병법서는 상당히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현실성을 내포한 사상이지만 서술 자체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거국적이기 때문에 (사실 <오자병법>은 <손자병법>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이긴 하다만...) 통으로 읽어서는 남는 것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상당히 친절하게 <오자병법>을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오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는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사마천이 <사기>를 기술할 때 오기를 잔인하게 묘사했는데, 아내를 죽여서 벼슬을 구한 자, 증삼의 문하에서 유학을 배워놓고 어머니의 제사를 치르지 않은 부덕한 자, 재물과 여색을 탐한 위인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기에 대한 <사기> 문헌을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오기라는 인물은 상당히 특이하고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마치 그 시절의 전형적인 인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중 삼중 사중인격자처럼 모순 투성이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사기>에서 잔인한 오기가 왜 <한비자>와 <여씨춘추> 등등의 문헌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는가


그리고 실제 오기가 재물과 여색을 탐하고 소인배처럼 행동했다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모습도 있을 법 한데, 사서 속의 오기의 모습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병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 (종기를 빨아주는), 일반 병졸과 같이 행동하고 일반 병졸과 같은 대우로 군대를 이끈 모습, 군주에게 돌직구 상소를 자주 날리는 모습 등등을 볼 때, 그는 상당히 의리가 강했고, 인간적이었으며,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 충신의 모습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기에 의해 국토가 처음으로 풍비박산 난 진(秦) 나라의 문헌 <여씨춘추>에서 오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본진을 유린한 적국의 장수를 성인으로 추앙하기란 쉽지 않은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는 이런 오기의 모순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일리가 있었다. 첫 번째로 오기 시대의 기득권 귀족들이 굴러들어온 돌인 오기를 질투하여서 중상모략을 꾸민 것, 두 번째로 후대의 유교 중심적 역사가들이 그런 중상모략을 사서에 공식적으로 기록하면서 오기는 빼도 박을 수 없게, 폄하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오기는 능력은 출중했지만 신분이 비천하여, 지지 세력이라곤 군주의 총애 외에는 없었다. 그런 그가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으니, 당대 폐쇄적인 귀족들이 얼마나 반발하겠는가,


 오기는 노나라 -> 위(魏) 나라 -> 초나라 등으로 국적을 옮기는데, 항상 공을 이루고 귀족의 견제 때문에 도망 나오는 신세였었다. 야인, 천민 출신의 그는 기존의 신분제의 한계를 파악하고 귀족들의 특권을 줄여 중앙집권화를 이루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상벌을 공정하게 포상하며, 천민이더라도 공적을 이루면 국가에서 합당하게 포상하려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당연 백성들은 환영했지만, 당대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오기를 축출해야만 했다. 결국 오기를 지켜주던, 명군들이 죽을 때 오기는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초나라에서도 그렇게 죽어야만 했었다.


사실 오기와 같은 전쟁영웅들은 말로가 비참한 경우가 많다. 한신이 그러했으며, 서양으로 보면 스키피오가 있겠다 더불어 개혁가들의 운명도 좋은 경우가 없는데 오기는 군권과 정권 두 부분에서 공격받을 부분이 많았으니 어쩌면 죽음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보수층은 두터웠었다. 그 보수세력의 이너서클을 깨려는 오기는 도리여 결국 죽고 말았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숱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책에서 오기가 묵학(묵자의 사상)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 주석 처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기가 병가의 사상을 배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오기가 묵학을 직접적으로 배웠다는 주장은 조금 과한 해석이 아닐까도 싶었다.


가장 재미있게 해석한 부분은 아무래도 3챕터의 '손자 vs 오자' 군신들의 전쟁관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손무는 귀족주의적 장군의 모습이며, 오기는 천민 출신 장군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아주 일리가 있었다.


사실 <손자병법>은 굉장히 객관화된 수치를 강조하고 있다. 전쟁은 속임수이고, 전쟁은 사람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황)에게서 구한다.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적국 안에서 약탈을 강조하고(보급은 적국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사상은 결과론적으로 약탈을 허용하는 주의다.), 전쟁은 경제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계산기를 잘 두드리고 본전보다 더 이득을 낼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군대를 출정시켜 베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런 부분들을 인용을 통해서 조목조목 밝혀내고 있었는데, 실제로 <손자병법>에서는 군대를 출병시킬 때 성을 가진 백성(즉 귀족, 이 당시에는 성을 가진 자는 귀족이다.) 의 재산이 고갈되면 큰일이라고 강조한다. 


귀족들을 옹호한다고 하더라도 손무의 사상은 당시 춘추시대의 전쟁관, 귀족들의 허세적 스포츠 개념 - ex 송 양공의 고사 -에서 많이 탈피한 사상이 보인다. 적을 기만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손무의 가르침은 확실히 예와 격식을 차리며 마치 귀족 놀음처럼 전쟁을 하던 춘추시대의 전쟁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손무는 유형적 가치를 중요시한 사상가였다. 그에게 있어 전쟁은 '경제력'이며 장군은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전쟁을 수행하는 그런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반면 오기의 사상은 달랐다. 물론 오기 역시도 손무가 강조하는 경제력과, 물리적 수치를 중요시하긴 했지만 손무에 비해 무형의 가치에 좀 더 힘을 실었던 사상가였다. 애초에 병법의 가장 큰 속성은 속임수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오기도 인정하고 있고, <오자병법>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자는 상황적인 여건보다도 '정신력'을 더 강조했었다. 손무가 병졸들을 신용하지 못하는 그런 고질적인 귀족적 시각을 가졌다면, 오기는 그럴수록 병졸들과 함께 하며, 격식을 없애고, 장수가 솔선하여 병졸들과 함께 같은 대우로 군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병졸과 함께 하여, 병졸을 정예화하여 손발처럼 부린다는 사상.


흔히 오기를 법가적 인물로 비유하는데, 책에서 주장하는 것 대로 사실 오기는 법가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기는 유가적인 부분이 다분하다. (책에서는 묵가적 겸애사상과도 연결 짓는데 개인적으로 그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분명 오기는 공자의 수제자 증삼의 제자였었고, 파문을 당했어도, 유세를 하러 다닐 때 유자 옷을 입고 다녔었다. 그런 부분에서 오기는 유학자로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고 자신의 명예에 대해서 상당히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병사들에게 다가가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병사들을 믿고, 함께 하는 부분은 유가에서 주장하는 인의 정치와도 닮았다. 더불어 손무가 전쟁을 경제력으로 해석했다면, 오기는 전쟁을 정치력으로 확대 해석했었다. <오자병법>의 첫 챕터가 도국(道國) 즉 정치에 대한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원론적인 부분 같아도, 상당히 의미심장한데, 지도자에게 덕을 겸비하라는 사상 등은 유가사상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흔적이었다.


그런 오기의 군사정책은 병졸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고 유대감을 강화하면 어떤 적도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상 이길 세를 형성하고 싸우라는 손무의 사상과는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손무의 사상이 깐깐하고 객관화된 수치를 강조하고 손해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불리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하는 반면 오기의 경우는 다소 좀 불리하더라도, 정예화된 군사가 있다면 해 볼 만 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저자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또 한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손무라는 인물은 지금 실존 인물인지 가상 인물인지 혼동되는 인물이다. <춘추좌전>,<국어>,<전국책> 등등의 책에서 오기의 흔적은 분명히 드러나는데 반해 손무의 기록은 없다. 합려를 패자로 만든 1등공신의 이름이 당대의 역사 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손무라는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고도 주장한다. 그에 반해 오기는 확실한 실존 인물이다.


 두 병법은 사실 상호보완적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사실 객관적인 세를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고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은 주도권 싸움인데, 어느 누가 주도권을 내 주고 싸우겠는가, 다만 최대한 노력한다 하더라도, 불리함을 가지고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게 인생이고 전쟁이다. 그럴 때는 손무가 말한 것처럼 피하기만 해야 할까? 그래야 했다면, 이순신의 명량 대전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기는 자신의 군사 정예화 이론을 실제로 검증한다. 당시 최고의 국가인 진(秦) 나라의 50만 대군을 정예화된 5만 군사로 초토화시켜버린 명장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코너에 몰렸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손무의 사상보다는 오기가 강조한 정신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경제문제이기도 하고 정치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사상가의 생각을 상호 대립적으로 이해하기보단,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시대적으로 오해받아온 사상가들을 위해 진혼굿의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묵자와 오자에 이어, 순자, 한비자, 안자 등등을 조명하고자 한다. 나는 그의 글쓰기에 크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소 좀 비약이 있더라도, 조명하지 못한 사상가들을 풀어내 주는 그의 글쓰기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아쉬워한 플라톤이 떠올랐었다. 플라톤 역시 스승의 억울함을 숱한 대화편으로 남겼듯, 작가의 죽은 사상가들을 위한 진혼굿 글쓰기 역시 비슷한 예가 아닐까, 비주류에 대한 글쓰기, 그것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나는 존중하고 응원하고 싶다.   


책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지도 자료를 첨부하여서, 오기의 이동 경로나, 오기의 망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를 도왔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나는 이 시기에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받아들이기 쉬웠지만, 여러 나라가 중구난방으로 나오는 탓에 일반 독자들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나 싶었다. 그 부분이 아쉽다면 아쉬웠었다.


사실 오기의 실제 성격은 어땠을지 알 수가 없다. 실제 오기가 다중인격자라서,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벼슬을 얻었을 수도 있겠고, 재물과 여색을 은밀히 탐하면서, 공적으로는 강직한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사서에서 보이는 부조화적인 부분, 그리고 역사 기록물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그의 모습, 적국에서조차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의 모습, 병사를 지극하게 아낀 그의 모습, 미천한 출신인 그가 공적을 이루고도 기득권의 견제로,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삶, 그 삶을 반복했던 불우한 개혁가...


그렇게 병사를 자기 자식처럼 아낀 장군이 자기 아내를 죽였을까?

그렇게 군주에게 바른 돌직구를 날린 재상이 과연 재물과 지위를 탐했을까?


만약 이 모든 것이 날조된 귀족들의 음해라면, 그것을 의심없이 기록한 사마천,사(史) 성이라 불리는 사마천 역시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긴 사마천 그 역시도 인간이니까,



인상 깊은 구절


저는 고국에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의 목을 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어머니의 상례를 치렀습니다.

저는 스승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떠났습니다.

저는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 자였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손자병법 - 손무>

<오자병법 - 오기>

<묵자 - 묵적>

<춘추전국시대 7 -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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