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상 세계의 사상 12
김부식 지음 / 을유문화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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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재미없는 책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일기장에 기록이다. 이 기록은 <삼국사기>를 보고 느낀 점을 표현한 글이었다. 

 

나에게 <삼국사기>는 그런 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국사 교과서에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힌 이 책은 그 뒤로, 독서 감상록에 단골손님이었으며, 그래서 억지로 몇 번 들춰봤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정사이자, 역사 책이라는 의의도 있다.

 

 원래 거추장스러운 타이틀이 많을수록, 어린 시절에는 그 책이 재미가 없는 법이다.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중국의 <사기>는 문학 작품으로 생각될 정도로 묘사나 표현이 살아있지만, 대체적으로 <삼국사기>의 기술 방식은 몇 월 며칠 무엇을 했다 식의, 딱딱한 사실관계만 있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가 어려웠었다.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본기(왕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메인으로 다루고 있으며, 잡저에 각국의 지리와 관작 등을 서술하고 있고, 열전(그 시대에 뛰어난 영웅의 개인적 전기)에 각 나라별로 뛰어난 인물들의 전기를 담고 있는 전형적 '기전체' 역사서였다. 아무래도 이런 기전체 형식은 중국의 사례를 본떠서 만들었겠다. 불멸의 역사책인 <사기>의 체제가 바로 기전체이기 때문에, 그 명저 아래로 동양의 많은 나라들은 기전체를 본떠 역사를 기록했었다.

 

사실 책은 신라 중심적인 내용이 많았다. 아무래도 삼국의 승자는 신라였고, 남은 기록들도 신라의 기록이 많았을 것이니 많이 참조를 했음에는 틀림없겠다. 그래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신라 본기의 분량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본기의 차례도, 신라가 가장 앞서고 있으며, 그 뒤로 고구려와 백제 순으로, 이어졌다. 즉 편제에서도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분량에서도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열전에서도 이런 신라 우위적인 모습을 부분을 보여주는데, 고구려나 백제인에 비해 신라 영웅들의 열전이 많았으며,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10권의 열전 중 3권이 바로 '김유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루했던 <삼국사기>를 다시 보게 된 이유도 '김유신' 때문이었다. 이십 대 초반, 김유신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생각보다 어른을 위한 김유신 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 문헌에 기록된 김유신의 모습들을 추적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삼국사기>에서 상세한 김유신의 열전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분량 만으로 보자면 왕 이상의 분량으로 기록되고 있었으며, 특히 한 인물의 열전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열전에 기록된 김유신은 사실 좀 신화적인 모습이 존재하긴 했었어도, 굉장히 귀감이 될 만한 영웅이었다. 내가 김유신을 주목하고 존경하게 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그 당시 기득권이 아닌 몰락한 가야파의 후손으로서, 폐쇄적인 성골 진골을 내세우는 신라 사회에서 우뚝 서게 된 부분, 기존의 이너서클이 규정한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 새로운 역사의 발자취를 만든 영웅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두 번째로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조국의 통일전선에 앞장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영달을 위한 출세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와 국가의 국익 이상의 가치 삼한의 일통을 꿈꾸며 행동했다. 그 모습은 현대의 개인주의적 출세가 만연하는 사회에 귀감이 되기 충분했으며, 그의 사상 자체는 남북 분단을 겪고 있는 지금의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세 번째로는 그는 김춘추라는 배경이 있었음에도 40~ 50대에 이르러서, 압량주 군주가 되어 존재감을 나타낸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굉장히 늦은 출세였었다. 사서에 김유신이 전선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전투는 낭비성 전투인데 이 때 김유신은 화랑들을 이끌고, 자살특공대로 돌격하여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군의 사기를 높였다. 이 낭비성 시기가 젊은 시절이었는데, 이 때부터 그는 조국을 위해 싸웠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는데, 김춘추라는 배경 덕분에 떵떵거리고 호의호식하며 타협하고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부터 흔들리지 않고,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인생의 황혼의 나이에 압량주의 사령관으로 나아가 신라를 수호하였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뤄냈다. 즉 이른 출세를 고집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기본기를 잘 닦은 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런 세 부분에서 나는 김유신이라는 인물 자체에 매력을 크게 느꼈다. 물론 그가 자행한 음험한 술수나, 극단적인 부분에는 거부감이 일기도 했었으나, 당시의 전시체제 사회상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는 부분으로 최대한 이해해보려고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삼국사기>라는 책을 통해 나의 선조인 김유신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았고, 선조가 하신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 김유신 열전을 포함하여, <삼국사기> 전권을 정독하여 읽었었다.

 

삼국의 역사를 상세하게 정리할 순 없다. 그러다 보면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세 왕조의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은 첫째로 전쟁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 그래서 그 시대에는 굉장히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로 주목했던 점은 흥성했던 왕과, 타락한 왕들을 볼 때 유심히 봤다. 그들이 융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몰락한 이유는? 그 부분들에 중점을 두고 사서를 읽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연개소문 열전을 읽으며 연개소문의 성이 천 씨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이 부분에서 <삼국사기>의 오점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백제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백제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백제사가 가장 기록이 적어 너무 아쉬웠었다.

 

그리고 열전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기존의 역사서들은 여성에 대해 열전을 남기지 않았고,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역사관으로 사서를 기술했었다. <삼국사기>의 열전에는 여성을 다루고 있지만, 그 여성들이 부귀영화나 힘을 가진 권력자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는 효녀 지은, 설녀씨, 도미 등등의 일반 백성 열전들도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도덕적으로 교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의도적인 부분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여성을 열전에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권력자가 아닌 백성을 열전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기전체 역사서에서 교양적으로 취할 부분은 본기와 열전이다. 기타 연표와 잡지(관등체제, 복식, 지리) 등등은 아무래도 본기와 열전에 비해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크겠다. 물론 사학자들이나 문헌학자들,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연표와 잡지 등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행위와 역사만을 담고 있는 본기와 열전 부분만 봐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내가 지금 <삼국사기>를 보는 것은 국사 시험을 보거나 국사 연구를 하고자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귀감과 역사를 통한 나 자신의 반성을 위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잡지나 연표 등은 사실 스킵 하면서 봐 왔었다. (게다가 연표나 잡지는 상당히 지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고전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고전 속에 대표적으로 꼽는 역사서는 중국의 <사기>가 대표적인데,물론 <사기>는 뛰어난 책이고, 표현도 굉장히 섬세한 책이다. 우리의 <삼국사기>와 비교해보자면 사실 <삼국사기>가 부족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삼국사기>는 한계가 있더라도, 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사기>는 가장 절대적인 기록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의 고대사 지식은 더 빈약했을지도 모른다. <사기>를 읽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나 역시도 틈틈이 심심하면 <사기>를 들춰보는, 그런 좋은 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같은 기전체 책인 <사기>만을 추존하고 <삼국사기>를 등외시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인식이 아닐까 싶다. <사기>를 본다는 것에 딴죽을 걸 마음은 없다만, 적어도 <사기> 2~3번 들춰볼 때 <삼국사기>는 한 번쯤은 들춰봐야 하지 않을까?

 

마치 지금 고전 풍토를 보면 조선시대가 생각난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실학이 눈 뜨기 전에는 철저하게 중국의 학문을 모방하는 것에만 머물렀었다. 그래서 이전 왕조들보다, 조선 자신만의 색채가 드물다. 선비들은 새로운 이론을 내기보단, 중국의 학문을 숭상하는 것에서 의의를 뒀다. <사기>를 맹목적으로 추존하는 부분에서 왜 자꾸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비록 기전체를 모방하긴 했어도 '우리만의' <사기> 가 존재하고 있는데 왜 우리 것은 보지 않고 타국의 역사인 중국 역사만을 절대시하고 고집하는가,

 

자고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따라서, 나는 타국의 역사서보다, 자국의 역사서를 먼저 읽고 나서야 타국의 역사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삼국사기>는 많은 한계가 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춰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내가 리뷰하는 을유문화사 이병도 선생의 역주본은 사실 직역을 한 부분이 상당히 보여서, 문체도 투박하고, 특히 국한문혼용으로 책이 기술되어 있다. 본문은 순 한글로 기록되어 있고, 역주에서는 한자를 병용하고 쓰고 있어서, 사실 대중적으로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번역본의 장점은 일단 가격이다. 상하 합쳐서 16000원이라는 점과 두 번째로 주석이 아주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문에 강하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가장 현대적인 번역과 읽기 편한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삼국사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차선책으로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삼국사기>도 괜찮아보인다. 동서판 번역본은 가격도 싸고 양장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경주를 다니면서 숙소에서 읽었다. 물론 다 읽진 못하고, 본기와 열전 위주로 읽었었다. 천년 고토, 신라의 기운이 서린 경주라는 공간에서 잠이 오지 않아서 늦은 시간까지 이 책을 읽었다.

 

책에서 가장 감동받은 구절은 김부식의 서문이다.

 

김부식은 스스로의 학문과 재주가 비천하다고 하면서도, 왕이 삼한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기술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것이(삼국사기) 비록 명산에 비장할 거리는 되지 못하나 간장병 뚜껑과 같은 무용의 것으로는 돌려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신의 구구한 망의는 천일이 비추어 내려다볼 것입니다.'

 

나는 김부식에게 속으로 말했다.

 

'신라 중심적인 서술, 그리고 몇 가지의 한계가 있는 책이지만, 당신의 기록이 없었으면, 아마 우리 후세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고대사를 접근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록은 '다행히도' 간장병 뚜껑이 되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명산이 비장할 겨레를 밝히는 등불이 됐습니다. 이에 나는 이 기록을 남긴 당신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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