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 개정판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홍익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때때로 작은 책이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텍스트임에도, 깊은 논의나 어려운 논의가 담겨 있으면 쉽게 읽어나가기가 힘들다. 이런 분야의 책들은 대체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논고를 담고 있는 철학서적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성학십도> 역시도 마찬가지다. 유학적 지식이 없다면, 상당히 읽어나가기가 힘든 철학서적이 바로 이 <성학십도>이다.

 

이 책은 퇴계 이황이 준비되지 않고 즉위한 선조에게 진상한 작은 책자이며, 한 마디로 퇴계 이황의 군주론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퇴계는 이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성을 논하고 있으며, 그 인성에 다다르기까지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퇴계의 글은 상당히 난해한 구석이 많다. 율곡의 글과 비교를 해 봤을 때, 퇴계의 글은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졌다. 퇴계와 비교해서 율곡의 글은 명료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퇴계는 이 책에서 바른 정치를 위해, 정치의 주체인 군왕이 마음공부를 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 책은 치국의 도나, 정치 처세의 기술론적인 부분을 고찰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 다스리는 법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학 그리고 성리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기치인(내 몸을 잘 닦아 남을 다스림)이다. 기존의 국왕의 군주론을 다룬 책들을 살펴보면 수기와 치인 둘 다를 고찰한 책들이 많다. 이것은 서양의 마키아벨리 <군주론> 역시도 마찬가지다. 군주의 마음에 대한 부분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치인에 대한 부분과 정치와 처세에 대한 고찰, 나 이외의 타인의 심리를 고찰하는 것으로 다스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퇴계의 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성학십도>는 오로지 수기, 즉 마음공부만 이야기하고 있다. 퇴계가 봤을 때, 군왕이 정사를 돌보는 데에는 정치적인 모략과 기술보다는, 바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그런 것 같았다.

 

<성학십도> 제목에서 의미하듯, 성학은 성인의 학문, 군주의 학문, 제왕학 등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다. 십도의 경우는 10가지 그림이라는 뜻으로, 굳이 제목을 풀이하자면 '성인에 이르는 10가지 그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이 10가지 그림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10가지의 유학 이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림이라고 할 순 없겠고, 한 마디로 일목요연하게 이념을 정리한 도표라고 보면 되겠다. 퇴계는 성리학의 이념을 10가지로 나눠서 각 이념마다 그림을 그려 유학에 학습론을 거시적으로 제시하고 글로 부연 설명을 했었던 것이다. 기존 제왕학 저서들이 텍스트 위주로 서술된 것에 반해 퇴계의 이런 그림 활용 등은 참신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퇴계가 먼저 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초 양촌 권근이 <입학도설>이라는 유학 초학서를 쓰며, 그림과 글을 병용했다고 나오는데 퇴계는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성학십도>를 완성했겠다. 실제 <성학십도> 안에 4장인 대학도는 양촌 권근이 <입학도설>에 그린 것을 약간의 수정만 하여 올렸다고 했다.

 

퇴계는 기존의 성리학의 이념을 밝혀 놓은 그림들을 참고하여 싣거나 수정하여 차용했다. 그 차용한 그림들을 학습 체계에 맞게 대대적으로 편제했으며, 때론 자신이 생각했던 이론의 그림이 없을 땐, 자기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그 그림에 대응하는 경전 이론들을 인용하여 쓰고 있었으며 때론 경전 이론들에 자신이 보충 설명을 쓰기도 했고, 퇴계 스스로가 자신의 견해를 뒤에 달아놓았다. 즉 이 한 권에 주자학의 학습 방법론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등이 체계적으로 압축되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유학의 A에서 Z까지 심학에 대한 부분들을 다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은 어려웠다. 그리고 다소 추상적인 논의도 나와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다만 이 홍익출판사 번역본은 주석이 굉장히 자세하고 친절해서, 그냥 지나칠 법한 대목들도 주석으로 설명하고 있고, 책에서 논의되는 경전들의 출처를 일일이 다 밝히고, 상세 설명까지 해 놔서 최대한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한 부분이 보였다. 본문보다 상세한 주석이 더 돋보였던 것 같았다.

 

또 한가지 이 책의 특징적인 부분은 조선의 인문지식과 자연 지식이 조화롭게 만나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부분이다. 책에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논고를 다소 형이상학적인 개념, 태극에 대한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이 인식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비롯한 태고의 천지창조와 인간의 본성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1장 태극도와 2장 서명도)

 

보통 우리는 자연 지식이라 함은 기술과학만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자연과학 지식은 이과 계통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다. 과학이 다루는 것은 궁극적으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다. 반대로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이 인문학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에게 생겨난 폐단 중 하나는 자연 학문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꼽을 수 있겠다. 바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자연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론적인 고찰을 중심적으로 자연학을 생각하는 것. 그 인간 중심적인 오만함. 그러나 자연학의 본질은 인간과 자연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그런 자연학의 본질론적 시각으로 볼 때, 동양의 음양학이나, 태극에 관한 논의 등등은 결국 어떻게 본다면 유학적인 사고 관념의 자연학, 이과학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역>이라는 텍스트도 단순한 점술서가 아니다. <주역>이라는 책은 한편으로는 동양의 이과 학문을 인문적으로 풀이한 책이기도 하다. 자연의 모습을 보고 만들어 낸 64괘, 그리고 오행 화 수 목 금 토에 대한 논고 등등은 어쨌든 동양에서 탐구한 자연 지식을 이론적으로 고찰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양의 자연학과는 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역시도 동양 나름대로의 자연철학을 가지고 있다.

 

책은 그런 동양의 자연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유학 사고를 적절하게 융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었다. 태고의 인간이 생겨난 본질에 대해서 퇴계는 나름대로의 고찰을 2장 서명도에 언급한다. 그래서 책은 적은 분량임에도 상당히 거시적이고 범위가 넓다. 물론 오행 화수목금토에 대해 유학의 이념 인의예지신을 대입하는 것도 상당히 어불성실 같아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짜 맞추기가 옳냐 그르냐를 떠나서, 퇴계의 저술 동기를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퇴계는 이 자연 이론들들과 인문 유학적 이론들의 융합적 설명을 통해 바른 인간 성인으로 가고자 하는 도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내가 주로 의미에 와 닿았던 부분은 3장 소학도(유학경전 <소학>에 대한 도표), 4장 대학도(유학경전 <대학>에 대한 거시적 도표), 5장 백록동규도(오륜에 대한 부분을 고찰한 도표), 9장 경재잠도, 10장 숙흥야매잠도다. 특히 10장 숙흥야매잠도는 지금까지 추상적이었던 바른 마음에 대한 고찰을 일상에 적용한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부분으로 시작한다. 바로 존재에 대한 인식과 선에 대한 부분을 태극도라는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에 반해 마지막 10장인 숙흥야매잠도는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만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 체계들의 편차는, 결국 마음공부의 최종적인 목표는 일상에 머물러야 한다는 퇴계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다.

 

책의 그림 도표는 상당히 자세하다. 유학의 핵심 이념을 체계에 맞게 잘 배열하고 있었으며, 읽었던 <소학>과 <대학>의 편차 역시도 아주 훌륭하게 잘 밝혀놨다. 확실히 이 작은 책은 유학을 처음 배우는 초학자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법 하겠고 (물론 다소 좀 어려운 논의가 있겠지만) 유학에 정통한 사람들은 자신의 유학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퇴계는 이 책을 상주하며 선조에게 '내가 나라에 보답한 것은 이 도 뿐이다.' 라고 하며 '소신이 충성하기를 바라고 가르침을 드리고자 하는 정성에서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학문적 공력을 다하여 책을 저술했다. 따라서 이 책은 성리학의 학문적 이념을 가장 체계적인 도표로 표현하고 있기도 했으며, 유학이 추구하는 마음공부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상 모든 일을 마음으로 풀어 나갈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르고 곧은 마음은 모든 일의 근간이다.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했다. 퇴계의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한계도 있었고, 동의하기 힘든 극단적 성선론적 관점도 있었지만, 읽으며 내 마음을 책의 이론에 대입하여 생각을 많이 해 봤었다.

 

이 지극한 가르침을 받은 선조는 결국 마음을 다스리지 못 했다. 그는 끝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고, 성군이 되지 못 했다. 퇴계의 이런 지극한 정성을 받은 군주는 조선의 최고 무능한 군주로 인식됐다. 퇴계는 지하에서 그런 자신의 '어린 주군'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