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 / 어드북스(한솜)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 :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저자 : 황윤

쪽수 : 461쪽

출판사 : 어드북스

가격 : 18000

 

 한국사의 전쟁영웅 중, 가장 대표적인 장군은 이순신이다. 우리는 국가적인 성웅으로 이순신을 추앙하고 있으며, 이순신을 다룬 강연이나, 책, 자기계발에 응용 등, 여러 가지 범위로 확장해서 이해를 하고 있다. 확실히 이순신은 임진전쟁 때 국가적인 성웅이였었다. 그런 이순신과 함께 거론되는 장군이 김유신이다. 이름 말미에 신자가 같아서 묶어 외우기도 편하다. 그러나 이순신과는 다르게 김유신은 덜 유명하달까? 김유신을 주제로 한 강의나 책들은 전무하다. 어릴 적 위인전에서만 보던, 김유신은 크면서 점점 잊히는 장군이었다. 최근 고구려 사관이 열풍을 불어, 신라는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특히 그 중심에서 비판받는 사람은 무열왕도 문무왕도 아닌 김유신이었다. 물론 이순신 역시 국가적 성웅으로 너무 추앙시켜 국가주의의 표본으로 삼기도 했었지만, 김유신은 전혀 다른 입장이다. 대체로 이순신이 너무 추앙을 받았다면 김유신은 양날의 검과 같이, 극단적인 추종과, 극단적인 비판을 가진 영웅이었다. 어릴 때에 항상 위인전집에 같이 있었던 이순신과 김유신, 그러나 그런 김유신의 삶을 조명하는 책은 만나보기가 힘들었었다.

 

이 책은 그런 김유신에 대해서 조명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오프라인 교보에서 만났다. 신간 코너에 있어서 눈에 들어와서 별 기대 없이 책을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게 내용을 풀고 있었다. 이 책은 크게 이런 장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유신을 다룬 역사서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가 있다. 여기서 <화랑세기>는 솔직히 학계 간 논쟁이 치열하여 아직까지는 사료적으로 쓰기엔 조금 조심스러운 감이 있다. 하지만 기존에 출판된 김유신에 관한 책들은 하나같이 다들 <화랑세기>에 입각한 서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재 김유신에 관한 평전은 3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까치에서 나온 <김유신 시대와 영웅> 이란 책이며 두 번째가 조선일보에서 나온 <김유신 무덤에서 뛰쳐나오다> 라는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책이 이 책인데, 나는 3권의 책을 다 가지고 있고 다 봤었다. 개인적인 비평을 해보자면 <김유신 시대와 영웅>은 출판사가 까치라서 굉장히 기대를 하고 샀었으나 엄청 실망을 했다. 저자는 언론계 출신이었다. 내용 면에서는 <화랑세기>를 진서로 규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특히 사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발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저자는 발해가 우리나라 민족이 아닐 수도 있고, 남북국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런 대목을 보며, 나는 저자의 사관 의식이 의심되기 마련이었고, 결국 이 책을 덮어버렸다.

 

두 번째 책인 <김유신 무덤에서 뛰쳐나오다>는, 사기에서 인용문이 나왔는데,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사실인 것 마냥 기록했던 부분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사기 열전과 본기까지 뒤져 가며 그 인용문이 맞는가를 확인했는데, 저자가 틀렸었다. 여기서 신뢰성을 잃었으며, 더불어 더 실망했던 점은 점점 읽으면 읽을수록 정치적인 색깔이 다분하게 드러나는 대목들이 거슬렸다. 물론 평전과 역사서는, 객관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글쓴이의 주관적인 입장이 당연하게 포함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래도 가치 중립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인물에 대한 행적 등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 공유할 순 있어도, 그걸 넘어선 오늘날의 사회 비판을 적나라하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도가 지나쳤다. 그건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 역시도 덮어버렸다.

 

두 권의 책은 이제 구하려야 해도 구할 수도 없다. 절판된 책이니까. 기존의 김유신 평전들에게서 실망감을 얻은 나에겐, 김유신이란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히기 마련이었다. 그러던 찰나 이 책을 발견했다. 일단 이 책의 저자는 무명의 작가다. 황윤이라는 분이 썼는데, 책에 약력이 없다. 다소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는데, (워낙 김유신 평전에 당한 게 많으니깐) 예상 외로 보물을 건진 기분이었다. 저자는 <화랑세기>의 기록은 저술하지 않으며 오로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중국의 정사들을 기준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화랑세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학계에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편향되지 않는 시선으로 그 시절 김유신에 대한 소상하고도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 시절에 대해서 배경 설명과 국가적인 입장 등을 고려하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김유신에 생애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으며, 그의 내면의 생각까지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신인 작가들이나, 재야 사학자들의 경우는 감정적인 국수주의에 의거하여,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담담하게 공인된 사서들로만 김유신의 생애를 풀어낸다. 이 책은 앞의 두 책들의 아쉬움을 일거에 날려버린 책이었고, 신인이자 무명작가가 객관적 관점을 가지고 썼다. 신인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역사적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저자에 객관적 태도에 대해서도 감탄했다. 더구나 내용 역시도 허접스럽거나 허술하지 않아서, 이 책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아름다운!! 편집적 구성이다.

 

평전과 역사서를 자주 읽어와서 아는데, 사실 평전의 가장 큰 적은 지루함이다. 대체로 평전의 구성은 글이 압박적으로 많다. 거기다 쪽수도 거의 400쪽은 기본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기존 평전류의 단조로움을 탈피하려고 애를 썼다. 책에는 간간 삽화가 있는데, 저자의 친구인 만화가가 이 삽화를 정성스럽게 그려냈다. 책과도 썩 잘 어울리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글을 읽다가 그림을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더불어 저자 역시도, 한 챕터가 시작되는 부분에 흥미를 유발시키려고, (이 책은 초년기, 중년기, 원숙기, 말년기로 구성됐다.) 김유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보여준다. 과도하게 길지 않고 3~4장으로 도입부만 장식을 한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애피타이저와 같은 깨알 같은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배려하는 부분은 기존의 무거웠던 평전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시도였다.

 

또 하나의 장점을 굳이 말하자면, 독자가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이 책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는 점이다.

 

그냥 보통, 삼국시대에 신라가 통일했고 김유신이 앞장서서 통일했다. 이 정도의 무난한 지식만 가지고 있더라도, 이 책은 상세하게 배경 설명과 필요한 지식들을 조곤조곤 알려준다. 기존의 국내에서 사학자들이 쓰는 평전들은 대부분 이런 난이도 조절에 실패를 한다. 너무 학구적인 범위와 대중적인 범위의 설정을 잘 못 하여서 일어나는 일인데, 저자는 탁월하게, 그 둘 사이를 친근하게 잘 풀어낸다. 무거운 역사 책이나 평전에 흥미가 없었던 사람들도, 편안하게 책을 독서할 수 있는 데다, 깊이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점도 존재하는데, 가장 큰 아쉬운 점은 지도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유신이 진격을 할 때나 여러 가지 군사들이 이동하고 공격하는 부분을 서술상으로만 나타내는데, 지도를 활용해서 설명한다면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참 아쉽게 느껴졌다. (이 책에는 지도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김유신이 처했던 현실적인 상황들, 서라벌 출신이 아닌 변방 출신, 거기다 가야계와 신라 왕족의 피가 섞인 모순적인 존재,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을 조곤조곤 분석하며 이야기하는데, 당시의 베타적인 신라 사회의 귀족주의에 안타까움을 느꼈으며 (어느 고대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러한 차별들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한 김유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오류는, 김유신이 왕가의 핏줄이라서 출세가 빨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김유신이 낭비성 전투에서 앞장서서 전투를 승리를 이끌었을 때가 35살이다. 이때 군의 사령관도 아닌 아버지를 수행하는 역할로 출전하는데, 고대의 나이로 본다면 출세했다고 보긴 힘들었다. 더불어 이 전투를 끝으로 김유신은 48살에 압량주(경산) 군주가 되기 전까지의 세월은 사서에 기록조차 없다. 이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김유신이 공적을 세웠다면 사서에 기록이 분명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 사회에서는 낭비성의 영웅을 중용하지 않은 듯싶다.

 

 김유신은 언제나 스스로 앞장서서 싸웠다. 첫 전투인 낭비성 전투에서 스스로 옷깃과 벼리를 칭하며 자살특공대로 돌격을 하여, 사기를 끓어올린다. 그래서 당시 최강인 고구려군을 무찌른다. 그 뒤 김유신은 자신의 경험했던 것처럼, 전투에서는 항상 사기를 세우기 위해 부하의 희생을 종용했다. 특히 황산벌에서는 자신의 조카인 반굴과 김품일의 자식인 관창을 희생시키며 진군했다. 적장 계백도 가족을 다 죽이고 전장에 나섰다. 극도로 비정한 처사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부른 비극적 선택이 아닐까.. 전장에 나서서 장군은 패배할 수 없으니까, 쓸데없는 인도주의에 휩싸이는 것만큼 장군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김유신은 병법을 잘 알고 있었고, 희생을 통한 사기진작의 심리전에도 능한 장군의 면모가 보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임엔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을 하는 김유신 역시도 개인적으론 마음이 아팠으리라,

 

사회적인 차별과, 무시에 능숙하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잘 알았던 김유신은, 나당 연합군에서도 무시를 당한다. 나 역시도 김유신에 대해서 극단적인 권력지향적 모습의 편견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김유신을 당나라의 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김유신은 나당 연합군에 불평등한 부분에서 항거한다. 그는 당나라의 은밀한 회유에도 신라에 대한 지조를 지켰으며, 당나라의 불평등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대놓고 분개했다. 당시 중국은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국과도 같은 존재인데, 그런 당나라에 꿋꿋하게 항거하는 김유신의 모습을 보며, 세간의 평가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책을 쓴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앞으로 저자의 저작 역시도 기대된다. (무명인 저자를 격려하고자 했던 의도도 있었다.)아마도 이 책의 저자 역시도 글을 써가면서, 김유신의 길었던 무명시절을 본받았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고, 차별이 있고 성공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고대의 차별보다는 더 개방적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꿈을 잊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는 이 책에 책 보호지를 씌웠다. 책이 그 만큼 마음에 들었고, 나 역시 김유신을 본 받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통해 김유신 평전에 대한 두 번의 실패와, 긴 기다림을 한 번에 보상받는 쾌감을 느꼈다, 더불어 이 책을 일독하면서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고 ,깊이 있고 ,유익한 영웅을 만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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