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업처럼 하는 투자 주주행동주의 - 그레이엄과 버핏부터 칼 아이칸까지 주주가치 극대화 투자 전략
제프 그램 지음, 이건 외 옮김, 심혜섭 감수 / 에프엔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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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을 기점으로 한국 주식시장에는 행동주의 열풍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에 개입한 행동주의 펀드 KCGI는 대주주 리스크와 주주환원 가치를 명목 삼아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 매집을 시작했다. 이후 공개 매집과 다른 사모펀드들의 개입으로 인해 주가는 고공행진을 달렸다. 최근 행동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얼라인 파트너스다. 일반인들에게는 에스엠 경영권 분쟁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에스엠 사건 외에 JB금융지주에도 행동주의 활동을 시작했고 나아가 은행 주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줬다. 이런 활발한 움직임 때문에 특정 종목에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하는 것이 '주주환원 정책의 미흡함'인데 눈치 빠른 몇몇 기업들은 행동주의의 흐름을 읽고 주주 환원 정책을 적극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주식 전반을 걸쳐 설명한 개론서와 가치투자 고전들을 접했다. 우리가 주식을 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돌아볼 때, 개인이 돈을 버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생산시설을 소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생산시설을 독점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금이 없는 개인의 입장에서 좋은 생산시설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정답은 바로 주식이다. 개인은 독점적이고 돈을 잘 버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생산시설을 간접적으로 소유한다. 그렇게 개인은 투자자가 되어 좋은 회사와 함께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린이를 대상으로 한 주식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나도 이런 내용을 보면서 노동소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본소득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식을 시작했다.

너무 많은 기대와 의미 부여를 해서일까? 액수와 상관없이 주식을 사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문화는 대주주나 오너 일가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심한 경우 주총에 대한 안내조차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재무제표를 볼 때 분명 회사가 돈을 많이 번 것 같은데, 현금배당은 생각보다 적었다. 새로운 사업이나 설비투자를 한 것도 아니고, 감가상각이 큰 것도 아니라서 주담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에 주식을 좀 한다는 분들께 물어보니 'K기업 문화 종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의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무게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가진 지분만큼의 권리는 철저하게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논리와 같이 싫으면 매도하라는 식으로 일갈한다면 이것이 올바른 대우일까? 이렇듯 한국에서는 주주에 대한 개념과 현실이 크게 괴리되어 있었고, 현명한 미스터 마켓은 이런 상황을 주가에 귀신같이 반영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장기투자보다 단기투자에 집중했다. 철저하게 수급과 테마를 중심으로 기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지표만 확인하고 단기적인 포지션으로만 매매했다. 트레이딩을 하면서 느낀 점은 수익은 꾸준하게 났지만 자본소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키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은 매매법이라고 생각했다. 단기간에 변동성이 강하다는 것은 수익을 크게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잃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단기매매는 집중투자로 이어질 수 없었고 결국 계좌를 크게 레벨 업 시키려면 중장기 투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장기투자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약이 돋보이기 시작했고, 이전과는 다르게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기업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초심으로 돌아가 가치투자의 명저들과 주주서한을 읽기 시작했다. 트레이딩보다 인베스팅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책도 이런 흐름 속에서 접하게 됐다.

책은 미국에서 일어난 행동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구성됐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을 필두로 한 여덟 가지 행동주의 사례는 자본주의의 꽃이자 성숙한 시장으로 통하는 미국 시장의 주주환원 운동의 역사이자 성장사다. 과거 2017년에 《의장! 이의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는데, 원전의 이름이 《Dear chairman》인 것으로 볼 때, 구판의 제목이 원전의 뉘앙스를 더 잘 반영한 것 같다. 구판 출간 이후 6년 만에 개정본이 출간되었는데, 주주환원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이 되는 시기에 맞춰 적절하게 출간을 한 것 같다. 개정판의 제목이 바뀐 부분도 작금의 상황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 본다.

저자는 시대별로 주주환원 정책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기업의 부패와 무능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를 대처하는 행동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들이 싸우면서 주고받은 서한은 어떤 내용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다양한 행동주의 운동을 읽으면서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미국 시장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느꼈다. 그들도 우리 시장과 마찬가지로 모순과 불합리한 부분이 많았고,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 시장은 갈 길이 멀었다는 사실에 막연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희망을 보기도 했다. 책을 보면서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행동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의 사례는 무분별한 행동주의 운동이 기업을 어떻게 무너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대표적 사례다. 모든 주주행동주의가 정당화될 순 없다. 실적도 좋고 주주환원에 진심인 기업을 대상으로 행동주의를 펼친다면 이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행동주의 문화가 들어서려면 기업이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투자자의 시각도 한층 성숙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주식투자의 목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단순 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동주의는 취지는 좋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특히 장기투자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 그리고 투자자 모두가 성숙하고 건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번거로운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여 한국 시장을 더욱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시장의 건전성은 주가의 건전성으로 이어질 것이고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됐던 코리안 디스카운트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시장이 이렇게 한층 업그레이드된다면 투자를 하기에도 좋은 토대가 마련될 것이고, 기존에 투자했던 분들도 대부분 경제적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책을 읽으면서 투자에 대한 생각과 철학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장기투자자들이 앞다투어 칭송하는 '이건' 선생님의 번역서라는 이유,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투자 출판사인 에프엔미디어 책이라는 이유로 책을 읽기 전에 무척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큰 교훈을 얻었다. 주식을 처음 하는 분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저자의 주장이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재무제표나 밸류 측정, 기술적 분석, 퀀트 분석, 달콤한 기법 위주의 '차익거래'와 관련된 책을 가까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더 큰 시각으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나 어느 정도 투자에 대해 경지에 오른 분들이라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주린이라 하더라도 주주의 권리나 주인의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나 한국 시장에서 꾸준하게 장기투자를 할 분들이라면 '올바른 투자관의 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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